로마에 남아있는 고대 유적지에 가보면 카라칼라 욕장이 매년 여름철에는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야외 오페라가 열리는 덕분에 이름을 널리 알렸기 때문이다, 그 전신은 이름 그대로 공공 목욕탕이다. 216년, 로마제국의 카라칼라 황제가 문을 열었으니 어림잡아도 180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부분 시설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로마의 중요한 유산이 되었다. 카라칼라 욕장은 고대 로마 시대에 번성했던 공공 욕장 중 두 번째 큰 욕장으로 꼽히는데 주 건축물은 너비 220m 길이 114m로 열기욕장으로 온탕, 냉탕 외, 각종 집회장, 오락실, 도서관 등을 갖추고 있으며 1,000명을 수용하는 시설을 갖춘 욕장 건물이다. 이러한 대형 욕장이 고대 로마인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활용되었을지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공공 욕장은 로마에서 시작되어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우리나라 대중목욕탕의 역사는 가슴시린 일제강점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교사와 일본인 등의 국내 거주가 늘어나면서 호텔과 여관이 생겨났고, 그들의 목욕수단에 따라 숙박 시설에 욕실을 설치했던 게 시초로 알려지고 있다. 근대적 형태의 대중목욕탕은 1924년 평양에서 처음 문을 열었는데 당시 행정관청인 부(府)에서 직접 목욕탕을 운영했으며 관리인도 따로 임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듬해인 1925년 서울에서도 대중목욕탕이 첫선을 보였다. 광복 이후 인구가 증가하고, 위생 관념이 강조되면서 대중목욕탕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영업허가를 위한 시설 규정이 제정되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휴식 기능을 겸한 목욕 문화가 태동했다. 

동네마다 자리를 잡아 우리 일상 문화의 중요한 거점이 되면서 목욕탕은 사우나 또는 스파 란 이름으로 동네마다 호사스럽고 고급스러운 목욕탕들이 들어서기도 했던 시절, 대를 이어가며 동네 사람들을 맞았던 동네목욕탕은 대부분 작고 아담한,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용하는 대중목욕탕은 가족, 친지, 이웃 간 목욕을 하면서 정을 나누는 독특하고 특별한 공간으로 보고 싶다. 어릴 적 아버지나 엄마 손에 이끌려 마을 목욕탕에 가 뜨거운 탕 속에 몸을 담그고, 서로의 등을 밀어주던 추억은 누구나 한번씩은 갖고 있을 터이다. 또 개운해진 몸으로 목욕탕 문을 나서며 마셨던 음료수나 구워놓은 계란과 그리고 우유는 그야말로 꿀맛이다 보니 세태를 반영하듯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대중목욕탕 씬이 빠지지 않았고, 1990년대 중반 방영된 TV 주말연속극 목욕탕집 남자들은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했다.

그런데 대중목욕탕이 우리 곁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주거문화 변화 등 시대 흐름과 코로나 19 장기화 사태가 맞물린 탓이다. 코로나 유행 기간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했고,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나 싶으니 이젠 치솟은 가스와 수도, 전기 요금이 덜미를 잡았다. 대중목욕탕은 업종 특성상 하루종일 보일러와 난방을 돌려야 하는 데 연료비와 전기료가 급등하고 손님은 갈수록 줄어들어, 더 이상 버티기 힘든 곳이 많아졌다는 뉴스가 터지고 있다. 코로나 발생 직후인 지난 2020년 2월 이후 전국적으로 1000곳 가까운 대중목욕탕이 문을 닫았다는 통계도 있다. 막대한 철거 비용 부담에 폐업을 하지 못하고 개점휴업 상태인 목욕탕도 부지기수니 이런 문화사태를 무엇으로 막아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