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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9일 한글날 원전 투표를 마치고 심포리 추추파크에 들렀다가 가까운 산자락을 걸으면서 우연히 며느리밥풀꽃을 만나게 되었다. 소나무 숲길 양지바른 곳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그 꽃을 발견하고 난 쪼그려 앉았다.
꽃대가 너무 작고 길가에 피어 있어 하마터면 밟고 지나갈 뻔한 며느리밥풀꽃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앙증맞도록 아름다웠다. 초롱꽃처럼 길쭉하게 붉은 꽃잎은 연지 바른 젊은 여인의 살포시 벌린 입 같았다. 그 안에는 하얀 밥알처럼 생긴 것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아, 슬픈 미소 같은 꽃, 이게 바로 며느리밥풀꽃이구나, 나는 두 개의 밥알 같은 것을 짯짯이 들여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이유는 이 숲속 외딴 곳에 처연하게 피어 있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문헌을 찾아보니 며느리밥풀꽃은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었다. 옛날 가난한 집에 시집온 며느리가 밥을 하다가 뜸이 들었나 보려고 밥알을 조금 입에 넣고 있는데, 표독스러운 시어머니가 이를 보았다. 시어머니는 혼자 밥을 먹는다면서 몽둥이로 며느리를 때렸고 며느리는 밥알을 입에 문 채 죽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며느리를 불쌍히 여겨 뒷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는데 이듬해 이름 모를 풀이 나왔으며 가을에 꽃이 피었다. 마치 이 꽃 모양이 꼭 맞아죽은 며느리의 입술처럼 붉고 그 안에 하얀 밥알을 물고 있는 것 같아 붙여진 꽃 이름이란다.
꽃마다 슬픈 사연과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고 놀라기도 하고, 작은 꽃을 통해 인생을 생각하고 우주와 자연을 생각하기도 한다.세상에는 꽃 같은 인생이 있고, 인생 같은 꽃이 있는 것 같다. 소나무 숲길에 숨은 듯 피어 있는 며느리밥풀꽃을 보면서 가난한 시절을 살다 간 며느리의 슬픈 삶처럼 간절하게 피워낸 꽃의 생명을 느낄 수 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산속에 한가로운 곳에 핀 꽃을 보았을 때 세상에 허튼 인생이 없듯이 허투루 핀 꽃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삶의 굴레를 돌리다보면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경험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와 마주쳐 그 만남의 숨결로 존재의 깊은 곳까지 흔들릴 때도 있을 것이다.
살다보면 소낙비도 만나고, 쾌청한 하늘에 날벼락도 만나는 게 삶의 이치라고 하지만 17일 오후 6시 경 성남 분당 판교 테크노밸리 야외광장에서 환풍구 철제 덮개가 붕괴돼 그 위에서 공연을 보던 관람객 27명이 20여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은 안전불감증 사건이 일어났으니 ‘세계의 눈총을 어떻게 피할까’란 생각든다. 이 때 어디선가 대중가요 ‘물레방아 도는데’ 의 멜로디가 구슬프게 귓전에 들렸다.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가을 다 가도록 소식이 없다는 떠난 이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은 지금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하늘은 어찌하여 16명에게 무거운 짐을 주었는지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분노를 갖게 되었다. 관람객을 집어삼킨 환풍구는 걸 그룹 공연 무대에서 15m가량 떨어진 곳에 설치돼 있었다고 한다.
환풍구는 행사 무대보다 높아 공연을 관람하기 좋은 자리여서 수많은 관람객이 몰려 있었으며 가로 5m, 세로 3m가량의 환풍구는 바둑판 모양의 철망 6개로 덮여 있었다. 그 위에 서있던 사고 관람객들은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철망과 함께 20m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원전 해결도 좋지만 삶의 질을 찾는 행정이 우선이다
걸그룹이 공연한다고 하여 퇴근길에 공짜 구경이라도 해보겠다고 무대가 잘 보이는 한쪽 귀퉁이 환풍구 위에서 변을 만나 희생자들은 어쩌면 노스탤지어를 노래를 통해 달랬던 물레방아도는데의 물레를 타고 먼 길 가는 나그네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쯤 되고 보니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영상을 타고 흐른다. 낙목한천(落木寒天)의 계절에 국화가 아름다운 것은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가을은 성취를 위한 고난의 과정과 견딤의 철학으로 잠도 잘 수 없었다는 시적 표현으로 승화되는 계절에 안타까운 생명들이 우리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나뭇가지 사이로는 쓸쓸함 대신 맑고 푸른 에멀랄드 하늘을 더 많이 열어준다. 그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은 단풍을 채색시키며 스산하게 불어 댄다.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미처 보지 못한 내 삶을 되돌아보는 가을밤이다. 내면의 뜨락에서 상념에 젖는 내 자신도 아픔 속에 성숙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딸자식은 가을볕에 내보내고 며느리는 봄볕에 내보낸다는 우리의 속담도 있고, 굿하고 싶어도 며느리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어 안 한다, 며느리가 미우면 뒤 축 발이 달걀 같다고 나무라는 속담이 있으나, 지금은 우리는 며느리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삼척은 청정지역으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원전 사업은 조금 더 고려해 주민의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유치하지고 난리를 피울 때와 지금처럼 반대가 심 할 때의 양극을 조화시켜야 시민 단합을 이루어 낼 것으로 본다.
올벼쌀 나올 때쯤 피어서 서리를 맞으면 이내 시들고 마는, 짧지만 아름답고 눈부신 존재, 며느리밥풀꽃. 이 꽃 앞에 무릎을 꿇고 싶다. 나는 며느리밥풀꽃과 며느리밑씻개를 볼 때마다 옛날 며느리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떠올린다. 오죽했으면 시집살이를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에 땡초보다 더 맵다고 했을까.
삼척주민은 물레방아도는데의 노랫말처럼 공장을 가동시키는 도시가 아님을 밑바탕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삼척 시장은 원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주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면서 올 곧은 행정에 노력해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