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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주논단/ 지역주민위해 헌신해 주시렵니까?
이희탁  |  lht47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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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2.06  20: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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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0세를 상회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을 다시 설계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생을 60년으로 생각하고 70세가 드물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벌써 지나가고 100세 건강시대를 맞이했다. 이제 누구나 60세 이후의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연장된 삶에 대해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느라고 정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을 늦게 다시 시작하는 젊은 노인들이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뒷방 늙은이로 자처하고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한 축이 된 자양분으로 남아 있는 삶이다.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 중 가장 정직한 것이 땀과 눈물이다. 고된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 땀이 나고, 참을 수 없는 격정이 마음을 흔들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그러나 땀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온도의 변화만으로도 흘릴 수 있지만 눈물은 억지로 흘릴 수 없다. 눈물은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슬픔과 비탄을 표현하는 침묵의 언어이다. 그것은 때로 백 마디의 말보다 기도보다 호소력이 강하지 않을까 싶다.

조선왕조의 22대 왕 정조대왕은 조선의 스물일곱명의 임금 중에서도 우리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왕이다. 전기의 세종대왕, 후기의 정조대왕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다. 그는 어느 사대부 못지않은 방대한 문집〈홍재전서(弘齋全書)〉를 남겼다. 다른 임금들도 시문이나 글씨 등 족적을 남겼지만 이렇게 방대한 단독문집을 남긴 이는 정조대왕 뿐이다. 또한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만들었듯이 정조대왕은 규장각을 만들었다. 둘 다 인재양성과 문화정치를 위한 씽크 탱크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같다. 세종대왕이 형님들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는 일이 순탄치 못했음에 견주어 정조대왕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험난했다. 정조대왕은 11세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하는 불행을 당했다. 그는 아버지의 구명을 위하여 대신들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아비를 살려 달라고 울부짖으며 호소했지만 결국 그의 아버지는 비명에 갔다.

진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거짓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고 여길 때, 정당도 싫고 구정치인은 더욱 싫다는 국민의 마음을 뒤흔들어준 사람이 바로 안철수라는 우람한 정치 신인이었다. 순진하고 때 묻지 않은 신인이 꼭 정치를 잘하리라는 확신도 없으면서, 믿음이 가고 거짓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여론조사 수위를 달리다가 갑자기 엔진이 과열되었는지 노후가 된 차량처럼 시세 차이를 두다가 이번에는 서울시장으로 출마 선언하면서 인기를 다시 얻고있다.

요즘 정치는 여·야가 무조건 블도저 방식으로 대립해가고 있다. 즉 불신 시대와 불신 사회라고 보고 싶다. 어느 것 하나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바로 오늘의 사회가 아닌가 싶다.

이런 가운데서도 더더욱 불신의 수렁에 빠진 분야가 바로 국회다. 지위가 높고 책임이 무거운 지도자일수록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고, 하는 짓마다 국민을 속여 먹는 작전에 능숙하다. 그래서 세상은 온통 정치 혐오증에 걸려 무조건 정치인은 싫고, 정치는 타기의 대상에 오른 지 오래되었다.

정치 없이는 나라도 안 되고 세상도 돌아가지 않음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토록 정치를 혐오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지겹도록 거짓말만 하던 자유당 독재의 12년, 억지로 헌법을 고쳐 정권연장을 지속했던 거짓, 그것도 부족해 유례가 없는 3·15 부정선거를 저질렀다가 국민의 분노를 산 이승만 독재는 4·19혁명으로 무너졌고. 게다가 정치 불신이 이제나 가실까 여길 때, 5·16쿠데타로 정치 불신과 사회 불신은 가속화되는 길을 걷고 말았다.

군에 복귀한다는 약속을 뒤집고 정권을 잡은 쿠데타 주역의 식언(食言)이 계속되면서 정치는 바로 나락의 수렁에 빠지면서 국민을 속이는 정권연장이 계속되었고, 새로 만든 번의(飜意)라는 추악한 용어가 신문을 도배질한 게 오늘날까지 이런 정치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24년 전, 1796년 45세의 장년의 정조대왕은 측근의 신하 김조순에게 “나는 왕 노릇” 하기를 즐기지 않았다. 나는 왕위에 오른 직후부터 하루가 지나면 마음속에 스스로 말하기를 오늘하루가 지났구나하고, 이틀이 지나면 역시 그렇게 여기며 하루 이틀 살얼음 밟듯이 20여년이 되었다라고 고백하였다.

최고통치자의 자리는 누리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힘겹고 고달픈 자리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언사가 아닌가 싶을 만큼 칭송하고 싶다.

우리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나 시장, 그리고 사무관, 도·시의회 의원 이상 되시는 모든 분들은 지역을 위해 올 곧은 사업에 계승하도록 노력을 기울여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과연 내가 맡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면서 주민들에게 잘못 한 것은 없는지 분명히 반성해 보고 미흡했다면 지금부터라도 헌신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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