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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국제씨를 만나 대금굴 발견 및 발굴 과정 등에 대한 일화를 들어본다.
1983년 대금굴 일대 땅 매입
2003년 2월 동굴발견에 성공
- 대금굴은 삼척의 대표적 관광상품이다. 어떻게 발견되었나?
1983년 현재 대금굴 일대의 땅을 매입하고 송어양식장과 식당을 운영할 때 물골 계곡에 동굴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마침 내가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환선굴 개발을 도와주었던 ‘한국동굴학회’교수들을 수차 초청, 탐사 끝에 대형 동굴이 있음을 실제로 확인하게 되었다.
- 대금굴 발견이 2003년 2월이었다. 발굴작업은 언제부터 했는가?
1999년 동굴이 존재한다는 교수들의 최종 결론이 난 후부터다. 당시 김일동 시장에게 2002년 동굴박람회 전에 찾아 개발할 것을 끈질기게 건의해 시작됐다. 그러나 공사시작 2년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않자 삼척시에서 여러분 포기하려 했었으나 나의 거듭된 권유와 김일동 시장의 결단으로 2003년 동굴 발견에 성공한 것이다.
- 대금굴 개발시 삼척시로부터 상당한 보상을 받았다는 얘기가 많았다.
관에서 사업상 필요한 모든 보상금은 법적으로 감정가 이상 지불할 수 없지 않는가. 1983년 토지 매입과 양식장, 식당 등을 건립할 때 서울에 있는 나의 전 재산을 처분해 투자했었다. 1997년 환선굴 개장 당시 주변 경관조성 때문에 지상 건물 3동까지 아무 보상없이 철거하는데 동의해준 일도 있다. 대금굴 개발 때도 나는 삼척시보다 배 이상의 금액을 제시한 모 종교 단체에 넘기지 않고 삼척시의 보상금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러한 내용은 김일동 시장의 자서전에도 실려 있다. 대금굴 진입로 부지도 2006년 삼척시로부터 받은 보상금이 내가 매수할 때보다 훨씬 못미치는 액수였다.
- 2007년 대금굴 개장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 개장식에 참석하고 싶었다. 그러나 김일동 전시장이나 나는 후임 시장의 초청을 받지 못했었다. 대금굴에 세워진 기념비 어느 구석에도 김일동 시장이나 나의 이름은 없었다. 대금굴 발굴과 개발과정이 기록으로 남겨졌을 때 관광지의 의미가 더욱 살아나는 것이다. 후임 시장이 바로 관광상품 마케팅의 기초적인 요체를 놓친 일이 안타까울 뿐이다.
- 후임 시장과는 학교 동창이 아닌가. 매점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이다. 대금굴 터미널 매점은 김일동 시장이 나에게 약속한 토지보상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후임 시장도 약속했었으나 나도 모르게 일방적으로 그러한 약속을 파기했다. 지금까지 단 한번이라도 나의 양해를 구했으면 못들어줄 사이가 아니었다. 그뿐이다.
인터뷰 / 김성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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