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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통상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와 상황에서는 그 사람의 본질을 잘 알 수가 없다. 일응 “여자가 남자(신랑감?)를 고를 때 술 취한 모습을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 우리는 벼랑 끝에 내몰리기 전까지 서로 믿음을 갖지만 어떤 ‘결단決斷’을 요구하는 위급순간에는 모험과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친구나 동료, 그리고 연인을 만나고 대화할 때 “나는 너가 좋다. 너를 믿는다. 내가 도와줄게” 등등 말을 하곤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무일 없이 평온한 상태에서는 누구나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화재 현장, 갑작스런 배 풍랑, 기타 위급상황에 처할 경우 마지막 선택 순간에서는 모두 각각 ‘인간성人間性’ 어김없이 나온다.
우리는 위급?비상 사태시 몇 가지 부류로 나타난다. ‘아예 모른 척 하거나, 잠을 자는 척하거나, 못 본척 하거나 등’ 하는 사람과 안정과 구조를 위해 ‘앞장서는 사람, 앞장서나 근성으로 하거나, 몸을 아끼지 않거나’등으로 분명히 갈라진다. 누구든지 남의 노력과 과실을 먹지 말고, 남의 헌신과 희생을 간접적이라고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상 사람은 남의 피와 땀에 의해 오늘을 살고 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선각자와 의사자 등에 의해서 말이다. 우리나라 선인들도 매우 많다. 그러므로, 매사에 적극성을 보이는 자세와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바로, 이순신의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정신을 자져야 자신도 온전히 살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