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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세계 각국을 날았다면 코로나19는 어딘가 숨어서 전 세계를 뒤집어 놓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이렇게 어수선했던 한 해의 어둠을 밀어내며 우리들 곁을 떠날 차비를 서두르며 새로운 신축년을 새 마음과 값진 포부로 맞으면서 경자년 금년을 잊게 한다.
2020년이 신축년 2021년을 부르자 새로운 한 해는 달력 앞장을 넘기며 성큼 눈앞에 와 있다.
모두가 밝은 꿈으로 새해를 맞이하면서 신축년 한 해 동안 꼭 하고 싶거나 해야 할 목표를 미리미리 설정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 때 그 때 닥쳐오는 그대로 맞서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려는 젊은이들에게 환한 웃음꽃이 피어나는 황소 해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들 삶이 고난과 힘든 일에 부딪힐 때마다, 새로운 힘이 솟아오르듯이 길을 걷는 이방인에게는 높은 언덕이 있을 테고 때로는 굽이치는 길이 있어야 숨고르기도 하고 평탄한 길과 비교하며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새싹으로 성장해 훗날 큰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인간사도 누군가를 멀리 두고 그리워하거나 회포를 풀 때 먼 훗날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몽테뉴는 그가 쓴 수상록에는 ‘인생의 가치는 우리가 살아온 세월의 길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얻는 것이 적을 수도 있을 테고, 인생에서 어느 만큼 만족을 찾느냐 하는 것은 몇 살이라는 나이로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말하려고 의문을 던졌을까 ‘그 해답은 오직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라고 단언했다.
공자는 평소에 이웃집에 놀러가는 것을 매우 즐겼다고 한다. 그 이웃집에는 돌을 다루는 석공기술자가 살고 있었는데 일반인들이 보면 쓸모가 없다고 버리는 돌덩이도 그의 손을 거치면 금방이라도 날 것 같은 새의 모양으로 바뀌는 기능을 보고 감탄하곤 했다. 어느 날 석공의 집을 찾았는데 석공은 노나라의 어느 명의를 위한 비석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공자는 그 모습을 보고 “어떤 누구는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처럼 이 세상에 왔다가, 어느새 흔적 없이 사라져 가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비석에 새기고 역사에 오래오래 남아 사람들의 기억에 머무는 보람된 인생을 살다가는 것일까”라고 중얼거렸다.
우리는 늘 변화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운명이다
그러자 그 석공이 공자에게 말하길 “자네는 일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고 물었을 때 공자는 “자기 이름을 세상에 남기는 것은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이에 석공은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 그보다 어렵지는 않겠지. 하지만 하잘 것 없는 이 돌덩이도 정교하게 다듬어진 비석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석공의 정성과 함께 많은 시간과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네 라고 말했다.
석공의 수만 번의 망치질이 결국은 향기를 내뿜는 아름다운 꽃 조각으로 새겨져 가는 것이다. 어느 철학자는 높은 나무의 열매를 바라보면서 그 높이를 헤아려 보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라고 했다. 우리는 늘 변화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이다. 분명한 것은 나는 나에게서 달아날 수 없고 이 지상을 벗어나 살 수 없듯이 고통과 즐거움을 받는 것, 또는 목표를 세우고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일의 주인은 바로 나다. 아울러 고통과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사람도, 인생을 설계하고 이뤄내고자 하는 그 주인 또한 바로 나일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꿈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만큼 땀을 흘리며 정성을 들였는지가 성공의 열쇠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숨결과 심장의 박동을 실감하고 인생의 특별한 의미를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단 한 번의 행운이자 흥미롭고 스릴 넘치는 소중한 여행이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만은 않다. 화살처럼 빠른 속도의 세월 앞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차가운 겨울 문턱에 서 있는 쓸쓸하고 고독한 모습을 하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 살아가면서 늘 자신을 뒤돌아보자. 그리하면서 거울에 비춰보며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세련되게 다듬어가자. 그래야 우리사회는 서로를 이해하고 정을 담아 기부체로 내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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