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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는 지적장애인협회 교우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협회가 삼척시에서 건축해 준 새로운 보금자리로 지난 해 가을 쯤 이사를 했다. 우아한 새 건물에서 그들은 또 다른 꿈을 키우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 동안 교회에서 마련해 준 공간에서 그 분들 만의 시간에서 일구어 낸 많은 업적들이 다소 많았다.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우승은 물론 연극까지 펼쳐내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필자의 마음이 기쁘고 돕고 싶은 마음이 한겹씩 더 쌓아가기도 했다.
우리가 장애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그들과 우리가 대답한다면, 신체가 약한 사람, 남들과 다른 사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불편함이 있는 사람, 여기서 다시 한 번 깊이로 들어간다면 신체가 약한 사람들은 모두 장애인이라는 말이 된다. 남들과 다른 사람은 모두 장애인이 된다는 뜻으로 보게 된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불편함이 있는 사람은 모두 장애인으로 보게 되는데 과연 맞는 뜻인가 싶다?
10여 년 전 쯤 된다! 10월 초 동창들과 정선 민둥산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에 젊은 남매가 이야기하는 걸 들게 되었다. 앞을 볼 수 없는 20대 초반의 남자 동생이 누나에게 하는 말이 지금도 내 귓전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아~ 공기도 좋고 날씨도 화창하고 경관이 참으로 아름답다. 이 말이 끝나자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앞을 볼 수 없어서 누나의 손을 잡고 오르면서 감탄사를 내 놓는 젊은이는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자연의 경관을 예찬하였을까.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필자는 누나 분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남동생분이 앞을 볼 수 없는 장애를 가지신 것 같은데 자연을 극찬할 수 있습니까?”라고. 그런데 누나 분의 대답에 필자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생은 어릴 땐 세상을 보고 자랐으나 어느 날 갑자기 병을 만나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착한 마음으로 세상을 만나고 있기에 향기를 맡고 귀에 들리는 소리로 감각의 표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하산하는 발걸음 마다 희망의 씨앗이 뿌려지는 기쁨이었다. 장애는 바꿀 수 없으나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해하고 배려해 주면서
사는 세상이 아름다울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장애인을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인식했다. 때문에 오늘날처럼 장애를 완전하지 못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고, 한계나 극복의 대상으로도 보지 않았다. 오직 그 사람이 지닌 능력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장애에 국한되지 않고 직업을 가질 수 있었고 존중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장애인 인식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근대화로 단순노동 위주의 장애인 직업은 사라져갔고, 점복과 독경을 미신으로 여기고 금지했다. 또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수탈로 많은 장애인은 심각한 생활고를 겪게 되었다. 그 결과, 장애인들은 구걸로 생활을 연명할 수밖에 없었고, 이때부터 우리는 장애인을 불쌍한 존재로 인식했다. 그렇다면 그 불편함을 정의하는 것은 누구인가? 불편함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지 않는가, 개인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장애가 아닌 것으로 보게 된다면, 우리가 장애를 떠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 배려한다면 장애인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문제는 사라진다고 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똑같은 한 사람이기에, 장애인에게도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는 언행들은 삼가 해야 한다. 장애는 개인의 다양한 특징 중 한 가지일 뿐, 그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장애는 바꿀 수 없으나,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바꿀 수 있다.장애인도 그저 나와 같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로, 하나뿐이기에 나와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길 바란다. 우리가 장애를 떠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더 나아가 배려한다면 장애인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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