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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이 실로 새삼스럽게 달려오고 있다. 2019년이 떠나면 새로운 1920년대가 10년을 내주면서 다시 시작하지만 뚜렷한 목적과 그 어떤 몸부림을 치려는 새 계획도 아직까지 갖지 못했다. 희망(希望)은, 바랄 희에 바랄 망, 바라고 또 바란다는 말이지만 필자는 어떤 희망을 바라야 옳은 가치를 마음에 담고 경자년 새해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둠 속에 쌓여만 있다.
희망도 바라고 소원(所願)까지 바라면 아니 될까 한다. 그러니까 희망, 소원, 모두 같은 받아보고 싶다. 필자는 기독교를 섬기고 있기에 마음의 기도를 올리면서 지역의 발전과 숨을 내 몰아쉬면서 약봉지를 들고 협회를 찾아오시는 회원 분들의 건강과 가정을 지켜 달라고 주의 이름으로 올리고 있다. 그런데 11월 25일 뉴스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맹아학교 학부모님들이 자녀들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학교에 가는데 어느 목사님이 주도하는 투쟁 확성기 소음에 지팡이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지 못해 어려움에 있다고 경찰서에 진정서를 올렸으나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서 결국 매스컴을 빌어 전국에 방송을 내놓았다.
청와대를 향해 분노를 전하고 옳은 정치를 원한다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도심지 한가운데서 주야장천 막말로 비판하고 계시지만 성직자의 자세는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되는데 해도 해도 너무 지나친 말씀이 마이크를 타고 들리고 있어 교인의 한 사람으로써 주의 종을 못난 사람이라고 필자가 비판하고 있다.
가족도 없고 집도 없이 절간을 지키는 스님이 들으시고 무슨 말씀을 내 놓으실까 란 생각까지 해 본다. 사소하게 보이는 그 하나의 투쟁이 당사자에게는 큰 힘이 되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짓인지 모르겠으나 목사란 직분은 교회에서 전도, 신도의 지도와 의식접전을 위하는 임무를 인데 길거리에서 정치를 탓하는 건 예의기 아니라고 생각한다.
희망이 없다면 산 자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지 않는가.
우리가 살다 보면 온갖 이유로 희망을 잃을 때도 있고 뜻하지 않는 재수도 머물 때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의 삶에 지극히 만족해서 바라는 바가 없거나 아니면 숱한 좌절의 경험으로 희망해 봐야 소용없음을 터득해서 악을 쓰며 달려드는지는 모르겠으나 공동묘지에 누워계시는 망자들께서도 왜 주검을 맞았는지 할 말은 있을 터, 사실이 아닌 허위의 막말로 집회를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는 것은 목사가 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성금은 교회에서 교우들이 자발적으로 내 놓는 것인데 투쟁 집회장소에서 성금을 거두고 어디에 사용했는지 밝히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650억 원을 북한에 주었다는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면 허위가 되는데 과연 목사의 직분으로 거짓을 세상에 내 놓을 수 있단 말인가!
본인이 모금한 돈은 밝히지 않고 북한에 퍼주었다는 발언은 옳지 않는 것이라면, 과대포장도 어느 정도이고 정말 사기꾼이 아니라면 사랑 제일교회 강대상으로 돌아가서 막말과 성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든지 밝히지 않고 칼질해도 좋겠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자문은 정부정책을 잘 알고 있는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에서 맡도록 주님께 기도하고 싶다. 기도는 마음속의 희망을 형상화하는 일련의 행위이기에 하나님께서 필자의 소원과 희망을 외면하지 않으리라 본다. 희망이 없다면 산 자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지 않기에 다가오는 새해 경자년의 희망을 섬기는 교단에서 축복으로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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