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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문화원 정재상씨 서훈신청 결실… 태백출신 김성산 의병장 등 28명
구한말 을사늑약(1905년) 이후 국내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강원도 삼척출신 김수영, 태백출신 김성산 의병장 등 28명이 한 향토사학자의 노력으로 순국 106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7일 경남 하동문화원 정재상 향토사연구위원장(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사진)은 “지난 2월 토지주택 박물관과 국가기록원에서 항일의병장 등 259명의 문건을 찾아 의병장 41명의 공적서를 만들어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는데 이중 28명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훈장을 추서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에 정위원장의 노력으로 건국훈장을 추서 받은 항일의병장 28명은 강원도출신 2명, 경남 12명, 경북 5명, 전남 6명, 전북 3명이다.
이들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07~1909년 사이, 50~400여명의 의병대를 조직하여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 일대인 지리산 가야산 태백산맥에서 일제에 맞서 항일투쟁을 벌이다 일제의 ‘남한 대 토벌작전’때 체포되어 학살 당하거나 전사 순국했다.
특히 삼척출신 김수영(金壽榮~1907. 12. 19·강원도 삼척 도계 육백산)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년부터 경상북도 북부지역과 강원도 육백산(六百山), 탕실(湯實), 석개(石開)등지에서 의병100여명을 지휘하며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그러던 중 1907년 12월17일 강원도 삼척 도계 육백산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다 체포되어 그해 12월19일 총살됐다.
또 태백출신인 김성산(金成山~1907. 11. 18·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의병장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 강원도 삼척군 장성면 황지(黃地)에서 의병 150여명을 지휘하며 일제에 항거했다. 그러던 중 그는 1907년 11월18일 소백산맥에 있는 강원도 황지 및 경북 봉화군 고직령(古直嶺)부근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으나 의병 50여명이 일본군의 칼에 찔려 한꺼번에 전사하고 그는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순국했다.
한편 문건을 찾아 공적서를 만들어 서훈을 신청했던 정재상 위원장은 “항일의병들은 온몸으로 일제에 저항하며 목숨을 바친분이다”며 “이번 훈장추서는 항일투사들의 민족애와 나라사랑 정신의 숭고한 뜻을 다시 한번 생각 하게한다”고 밝혔다.
정위원장은 “정부는 목숨 바친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보훈사업을 펼쳐야한다”고 덧붙혔다.
<자료제공 경남 하동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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