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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 삼척읍 교리광진산 서쪽의 초농산에는 선농단(先農檀)을 만들어 놓고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모셔 제사를 지냈다. 이를 선농제라고 한다. 제사는 매년 입춘에 지냈다. 오곡과 소를 잡아 제사상에 올리며 제사를 마친 뒤에는 경작하는 놀이와 수확하는 놀이, 창고에 저장하는 놀이를 하고 농악을 앞세워 오곡을 파종하는 놀이를 하면서 마을 길을 순회한다.
이것은 새봄이 왔다는 신호로, 새봄을 맞이하는 놀이었다고 삼척부사 허목(許穆)[1595~1682]이 쓴 『척주지(陟州誌)』에 기록되어 있다. 선농제(先農祭)는 지속 전승되어 왔지만 조선 말기에 고유 신앙을 폐지할 때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선농제는 없어졌지만 선농제 농악은 조비리를 중심으로 계속 전승되어 왔고, 오늘날에는 역사가 400년 된 삼척의 대표 농악이 되었다.
조비농악은 영동권(강릉, 동해 등) 농악과는 다른 판제와 진행 순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영동권 농악 대부분이 농사 중에 농사풀이를 하지 않는다. 조비농악은 성황굿의 신내림으로부터 농악을 시작해서 성황굿·지신굿·구호굿 순으로 진행하고, 고사덕담가가 끝나고 전체 대형을 풀었다 감으면서 치는 마당 1채 가락을 보유하고 있다. 이 부분이 특히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선농제(先農祭)는 조선 말기인 1907년에 고유 신앙을 폐지할 때 없어진 것으로 추청된다. 선농제는 폐지되었지만 농악은 지역 중심으로 꾸준히 전승되어 왔다. 1984년 삼척군에서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면서 활성화되기도 했지만 이후 조비농악 전승 마을인 조비마을[삼척시 삼척읍 조비리]의 인구 감소와 기능 보유자 부족으로 전승의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삼척조비농악보존회’가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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