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라디오나 TV에서 소록도에 두 간호사 (마르안느 수녀와 마가렛트 수녀)가 들고 온 가방에 마음을 담아왔다는 공익홍보 협의회에서 내 놓은 가슴 따뜻한 일화를 듣고 있다.
이 두 수녀들은 1962년부터 43년 간 소록도 한센인들을 돌보다 2005년 모국인 오스트리아로 귀국하였다가 이 중 마르안느 수녀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11년 만에 소록도를 찾아오시어 성당 맨 뒤 좌석에 앉으시어 미사를 올리고 나서 신부님에 의해 발견되어 모든 분들이 탄성을 터트리고 부둥켜안고 눈물바다를 이루었다는 소록도 성당이 밝혔다.
옛날 소록도 국립병원은 강제 수용시설이었습니다. 전염의 위험 때문에 철저히 격리를 시켰던 이곳에 꽃다운 나이 27세 때 소록도의 어머니로, 어쩌면 천사 수녀로 문둥병자들을 돌보기 위해 하나님의 부름으로 이 섬을 찾아 오셨는지도 모른다.
이 두 천사들은 6천 여 환자를 돌보실 때, 맨손으로 피고름을 짜내고 상처를 소독해주며 2005년 11월 일흔이 넘는 나이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어 부담이 될까봐 편지 한 장 달랑 남기시고 아무도 모르게 소록도를 떠난 이 세상에서 보기드믄 하늘의 천사들이었다.
중국 고서에 의하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을 줄을 언제 알 수 있느냐. 한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제자들의 대답은 제 각각이다. 한 제자는 멀리서 움직이는 것이 개인지 다른 동물인지 구분할 수 있으면 그때 날이 밝은 것입니다 라는 대답이 있었고, 또 한 제자는 나뭇가지인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있으면 그때가 날이 밝은 것이라는 대답도 있었다. 제자들의 말을 듣고 난 스승은 이렇게 답을 줍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내 이웃으로 보이면 그때가 날이 밝은 것이라고 했다.
또한, 밀림의 성자라고 알려진 슈바이처 박사가 어느 날 문명사회인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아프리카 원주민인 토인들에게 들려주자 식인종 중 한 노인이 진지하게 듣다가 한 열 명 정도 죽이는 겁니까 라고 질문에 슈바이처가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죽이지요 하고 답했다. 이에 대해 노인은 매우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백인들은 죽은 사람은 먹지도 않으면서 왜 아깝게 그런 짓을 하는지 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못내 아쉬워했다.
슈바이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과연 누가 문명인이고, 미개인인지를 생각하며 인류의 생명과 평화를 위한 헌신적 삶으로 일관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또 다른 이야기를 보면. 슈바이처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수상지에 갈 때다. 많은 기자들이 기차를 타고 오는 그를 만나기 위해 특실과 일등실을 뒤지다가 찾지 못했다.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꾸고 있어 행복합니다...
한 기자만이 혹시나 하고 냄새가 진동하는 삼등실을 훑어보고 막 돌아서는 순간, 한쪽 귀퉁이에서 신음소리와 웅성거림이 있어 다가가 보니 한 노인이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기자가 왜 당신은 특실이나 일등실에 있지 않고 이곳에 있느냐고 묻자 슈바이처는 “그러한 곳은 내 손길이 필요치 않지만 이곳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이곳에 있다”고 말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반면, 하늘에서 내려준 따뜻한 마음에는 두 수녀님들이 남기시고 호연히 떠난 예쁜 편지 한 장이 우리를 사랑으로 끌어당긴다.
“이 편지를 보는 당신에게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같이 지내면서 우리의 부족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이제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지만 도리어 낯선 땅이 되었고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지만 방 전체에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 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꾸고 있어 행복합니다.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이 다 생각에 묻힙니다.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저는 괜찮아요, 마음을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마카렛트 수녀 드림 )
참으로 복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헌신은 힘든 것인데 두 수녀님은 그 삶이 고통에 있고 그 고통으로 끝이 난다고 해도 한센인을 위해 43년 동안 자기 자신을 버렸다.
이 두 천사님을 잊지 않기 위해 MBC 라디오에서 공익광고로 애청자들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심에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