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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떠나가고 무술년마저 1월을 넘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망년회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언제부터 인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모임을 송년회로 부르고 있다. 직장, 학교 등 자신이 현재 속하고 있거나 과거에 속했던 조직을 비롯한 가족, 친지 등과의 모임 등에 송년모임에 초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중 정말 원해서 모임에 가는 사람은 정말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어느 단체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송년회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설문에 참여한 응답자들은 올 연말 평균 5번의 송년회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전체 응답 자 중에서는 3회가 25%로 가장 많았다. 송년회를 한 번도 참여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없었지만 가장 적은 참여횟수는 단 1회였다. 하지만 거의 한 달 내내 송년회 약속이 잡혀 있는 응답자도 더러 있었다고 응답했다.
필자는 탄광촌이 고향이고 이곳에서 학문을 익혔고 광산에서 30년 근무하여 송년회뿐만 아니라 여러 곳의 자리에 참여한다. 그 중 송년회에 참여하는 횟수는 단 3곳뿐이지만 지인들을 찾아가 덕담을 나누면서 음료 한잔 또는 탁주잔을 나누고 오는 횟수가 누구보다는 조금 더 많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임이나 자택방문 또는 송년회 중 마지못해 참석할 수밖에 없는 자리도 적지 않는데, 이곳으로 거주를 옮긴 지인께서 억지로 참석하는 송년회는 있느냐고 묻기에 그렇지는 않고 연락을 받으면 달력에 체크해 놓고 그날을 기다린다고 말했더니 위장이 좋고 술 해독이 빠른 사람 같다고 칭찬 같은 말씀이지만 속으로는 꾸지람 같은 느낌을 받는 기분이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친구를 맺고 동료로 정을 나누고 때로는 선배와 윗 어르신으로 모시면서 나의 걸음을 그들과 함께 동행 해 여정을 간다.
우리가 흔히 입에서 술술 내 쏟아내는 말 중, 독불장군으로 살다보면 험난한 고비를 만나게 되면 누구 한사람이도 나를 위해 거들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한 이웃에서 10년을 함께 살아온 동료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병문안이나 상가 집에 가지 않고 돌연변이처럼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다 보니 주민들은 참으로 아상한 사람이라고 수군거리었는데 아닌가 다를까, 그 집의 어머님께서 추석 전 날 운명하셨다. 늙은 노인께서 집안에 계시는 줄조차 모르는 이웃이 더 많을 만큼 이웃과 정분을 쌓지 않은 가정에서 큰일을 만난 것이다.
광부들 사택은 추석 명절로 인해 절간처럼 고요한 상태인데 오후 2시 경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떨리는 음성으로 반장님,,, 죄송하지만 저의 집에 어머님께서 조금 전 운명하셨는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면목 없는 전화를 드립니다, 라며 도움의 손길을 바랐다.
독불장군으로 살다보면 험난한 고비 때 도움 홀대
명절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날인데 필자 역시 망망하기 그지없는 상태지만 동료의 집안을 방문해 보니 달랑 4 식구가 어안 없는 상태로 서서 맴돌기만 했다.
상가에서 눈에 익힌 일이 없으니 망자에게 해야 할 순리조차 못하고 문을 닫아 놓고만 있다.
모든 일을 다 정리하고 난 후 작은 손길을 어려운 손길을 지원해 준 동료들을 초대하여 술잔을 돌릴 때, 그 분은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앞으로는 이런 삶을 살지 않겠다며 그 동안의 사생활을 털어 놓았다. 이유 없는 사연이 어디에 있을까 마는 혼자 사는 세상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 그 오래 전, 동료의 모습이 주마등에 걸려 불빛을 토해 내지만 어느 한쪽으로 기울여지면 무게의 중심은 벗어나게 되고 결국 탈선되면 인생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의 굴곡을 지나야 한다.
우리지역은 농촌과 어촌 그리고 광산촌으로 형성되었기에 제 각기 사는 방법이 다르다.
하지만 실직국 역사는 삼척의 위상이며 문화를 이어오는 전통을 정월대보름날 기줄다리기로 한마음 한뜻으로 끈끈한 정을 나누어 오고 있다.
나를 위해서 열심히 함께하는 사람에게 정을 주는 건 당연지사지만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면을 감추고 도움 주고 벗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자 새옹지마로 바꾸는 것이다.
/이희탁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