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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났어도 우리는 남의 동네일로 치부하고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나 최근 동양시멘트 협력업체(이하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동양시멘트(이하 동양)를 상대로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를 진행함에 따라 우리도 비정규직 문제가 남의 동네일이 아닌 우리지역 문제로 인식되면서 시민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유인물에서 제시한 “비정규직의 비애니 차별”이란 단어들은 지금 당장 우리에겐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단어들은 지역사회에 아주 오래전부터 돌아 다녔던 내용들이었다. 최근 들어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시민들 눈에 띈 까닭에 비정규직의 비애니 차별이란 단어가 눈길을 끌고 있는 것뿐이지 사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은 지역사회에 아주 오래전부터 돌고 돌았던 내용들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의 비애나 차별에 대한 문제가 우리지역에 오래전부터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동양시멘트 삼척공장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비정규직들에 대한 차별은 있어 왔었다. 다만 그들은 지금과 달리 비정규직의 차별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지금까지 참고 있었을 뿐이다. ‘일용’이란 이름의 비정규직은 오래전부터 동양시멘트 내에 존재해 왔던 직군으로 오랜 세월동안 곪았던 상처가 이제와 터진 것에 불과할 뿐이다. 언젠가는 터져 나올 상처의 고름이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왜 지금에 와서’라고 반문할 것이다. 또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나, 왜 그랬는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답은 동양의 처신에 있었다. 회사 운영기법에 그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의 이상한 인사제도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일용직으로 동양에 들어가 종사하는 협력업체 근로자 중 회사 기여도(?)에 따라 정규직으로 발탁해 주는 당근을 제시했기에 그 누구도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회사에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도록 사전봉쇄 했었다. 그들은 혹시 정규직으로 발탁되는데 불이익이 돌아올까 두려워 참고 또 참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일부는 일용으로 근무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스스로 판단해 살아간 자포자기형도 있었기에 지금까지 비정규직 운영에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한 이들은 누군가. 지금 협력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학력은 기성세대와 달리 대부분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는 고학력 세대이다. 그들은 기성세대보다는 학력도 높을뿐더러 또한 사회도 그전보다 훨씬 밝고 투명한 세상이다 보니 ‘이건 아니다.’라는 판단에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도 감수하고 처우개선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결속력이 강한 노조 결성에 집단행동까지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실제로 일용으로 이십년 이상을 근무하다 몇년전에 퇴직한 분(우체국 앞 집회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당시 일용직들이 받은 설움은 상상을 초월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일용’이었기에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참고 받아들였지만 인간이하로 대우할 때는 당장 그만두고 싶었으나 가족을 생각해 참고 생활했다고 했다. 그는 관리파트 직원들은 그래도 덜했는데 같은 현장에 근무하는 정규직이나 현장 책임자들이 주는 모멸감은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랬을 것이다. 지금도 비정규직을 모멸하는 정규직의 태도를 비판하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는데 예전에는 당연히 그랬을 것으로 생각한다.
동양과 협력업체의 엇나가는 행태는 우리 시민들이 바라는 관계가 아니다. 동양의 주장대로 협상 대상자가 아니라며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 또한 향토기업인 동양이 보여야할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동양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우리 모두가 이해는 하고 있지만 그래도 지역주민이 대다수인 그들의 목소리를 한번쯤 들어보고 좋은 방향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향토기업으로서 책무가 아닌가 생각한다. 좋은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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