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 도계 5일 장터에서 한참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자식을 두고 아버님 곁으로 가신 어머님이 떠올라 주마등을 켜 놓고 어머님과 마주했던 그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엮어 본다. 어느 지방이든 약장수들이 발길두면서 동네 어르신들을 불러 즐거운 시간으로 지루함을 달래주시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그 장소로 출근을 하신다. 물론 약장수들이 우리지역에 오시기 전에는 노인정이나 이웃집에서 할머니 몇몇 분이 모여 화투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셨는데 이 장사가 들어오고 부터는 꼬박꼬박 약장수한테 출근해서 비누, 설탕, 화장지, 밀가루 등 생필품을 선물 받았다며 방 한 칸을 채우다시피 갖다 놓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끔 필자가 부모님 자택에 들리면 이 사람아 이것가지고 가라시며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배급을 주듯이 이것저것 손에 들려주신다.  어머님 생신은 단오 날이라서 동생들이 이날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데 하룻밤 묵고 가는 자기가 쓸 방문을 열어보고는 깜짝 놀라 엄마 이것들이 다 뭐야 했다.

가격이 꽤나 간다는 전기매트, 녹용, 한약 등 사용처도 알 수 없는 기기들이 쌓여 빈 방을 어지럽히고 있어 성질 급한 동생이 쓴 소리를 내 던진다. 세상이 변해간다고 해도 이럴 수가 있나,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들을 꼬드겨 물건 파는 사기꾼을 지방 유지들은 다 무엇을 했고 경찰들은 방관만 했냐고 자기주장만 내깔리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그러면서 이놈들의 약장수를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어머님은 약장수가 사라고 해서 산 것이 아니고 내가 좋아 보여 너희들이 준 돈으로 구입했다며 오히려 약장사를 두둔하고 나서자 모자지간에 한바탕 소란이 난 적이 있었다. 

여러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약장수를 주둔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외롭고 적절할 때 약장수의 공연장에 가면 신바람이 절로 나와 살아가는 맛이 난다고들 한다.

어머님들 말에 의하면 약장수들은 단순히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에게 유익한 생활지식과 건강체크 등, 이를테면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말고 잘 쓰고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라... 또는 할머니들이 죽으면 아무도 벌초하지 않으니까 깔끔하게 화장하고 가시라라는 등등 할머니들의 당면한 과제를 풀어 주시니 자식들보다 더 좋다면서 눈만 뜨면 약장사들을 찾게 된다고 한다. 

알면서 속고 모르고도 속지만 그들 앞에 가면 무조건 즐겁다

그러시면서 우스갯소리로 할머니들을 즐겁게 해 주고는 돌아갈 때 작은 티슈 한 통이라도 선물이라고 주시니 동네 할머니들에게는 그들이 예쁘고 고맙기가 그지없다고들 하신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세상의 일이 자식들 마음에 낙수 물처럼 떨어지고 있다~  그렇구나... 약장수라고, 노인네들을 꾀어서 쌈짓돈이나 뺏는 파렴치한 사람이라고 폄훼한 나의 무지렁이에 얼굴을 들 수 없다.

그것은 약장수야말로 엄마에게 아들딸 못지않게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침 밥 한 술 드시고 갈 때가 있다는 공연장, 누구 말씀대로 매일 출근할 수 있는 근무지를 제공해 주었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시장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작은 물건을 공짜로 주시니 자식보다 좋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어머님이라며 부둥켜안고 반갑게 맞이해 주는 약장사들... 하지만 엄마는 약장수한테 가면 알면서 속고 모르고도 속지만 그들 앞에 가면 무조건 즐겁다고 하시니 자식인 내가 부끄럽고 너무 나약해진다. 무엇보다 우리는 엄마가 즐겁고 맑은 미소를 잃지 않고 머금고 계시면 되는 게 아니겠는가?  

필자가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 부모님들을 위해 즐겁게 해주시고 쌈짓돈을 조금 빼들어 가시더라도 물건은 제대로 된 것 갖다 놓고 어르신들을 꼬드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내 부모님 손에서 ‘아범아, 이것 가지고 가거라... 엄마 그 물건이 약장사가 주신 거지요’라며 서로 믿고 받아갈 수 있는 그런 물건으로 우리 부모님들과 한마당 잔치를 펼쳐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