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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이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이 타인의 강요에 따라 이루어지든지, 혹은 개인의 자발성에 따라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다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 도서관은 학생들의 독서에 대한 자발성을 키우도록 다양한 시도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 진다.
정호승 시인은 몇 년 전 책과 삶이라는 주제의 인터뷰에서 ‘모든 인간에게서 시를 본다’고 말한 바 있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했던 ‘모든 이에게서 신을 본다’는 말이 연상된다. 시인은 매우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말을 했지만, 일련의 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 주는 단면이라 하겠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뼛속까지 시인이었다. 고등학교 때 진로를 정한 이후 단 한 번도 주저함 없이 시인의 길을 걸어 왔다. 시를 써서는 온전히 밥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그는 그렇게 45년 가까이 시를 붙들었다고 보여 진다. 시는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언어예술이라고 보고도 싶다. 문학은 가장 오랜 장르이면서 본질적인 예술 분야이기에 그 시의 근간을 이루는 사유 체계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언어가 아닌가 싶다.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필자는 보고 싶으나 개성이 있기에 나름대로의 주관에 따라 그 모든 게 이루어지리라 본다. 책 읽기는 존재의 집을 튼실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기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엄살을 부리기에, 마치 콘베이어 벨트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에서 한가하게 독서나 하고 있을 여유가 있겠냐는 푸념으로 보고 싶다.
희망이 곧 삶을 지켜 내는 힘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희망은 어리석고 헛된 것에 불과한 것일까... 아무도 희망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본다. 가보지 않은 길을 없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루쉰은 친구와 함께 쇠 철로 만들어진 출구도 창문도 없는 방에서 잠이 든 사람들에 빗대어 희망을 물었다고 한다.
잠이 든 사람들을 깨울 것인가, 그냥 자도록 둬야 할 것인가, 친구는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 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답했다. 우리는 이것을 바로 희망이 아닌가라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내 눈 앞에 당장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더라도 어쩌면... 에서, 희망이 시작된다고 자신을 갖고 출발하면 모든 것이 그 뜻대로 시작될 것으로 믿고 싶다.
희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은 희망이 길과 같기 때문으로 보여 진다. 처음에 없던 길도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탄탄한 길이 되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희망을 함께할 때, 희망의 주변을 맴도는 불확실한 안개마저 사라진다고 믿는다.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은 사라지듯이 구경만한다면 희망 또한 쉽게 질 위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희망이 진정한 곳으로 함께 가자고 손짓하면 나는 그 희망을 분명히 선호할 것이다.
위풍당당 했던 초목은 기세 접고 겸허히 옷깃 여미며 결실 준비
희망은 구경하는 대신에 동행하는 것이고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다. 희망이 거기 있기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고 가야 하는 길이기에 희망을 갖는 것이다.
처서를 기점으로 하여 태양의 고도가 살짝 기울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폭염은 자리를 뜨고 산들바람이 밀려오다 오늘은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다. 그 위풍당당 했던 초목은 기세를 접고 겸허히 옷깃을 여미며 결실을 준비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찬란했던 생을 한 개의 꼬투리에 고이 접으면서 오로지 자손 번성의 염원만을 안고 고개 숙인다.
이 지면을 읽는 날이면 하현달이 하얗게 빛나는 밤이 될 것 같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고 따끈한 국화차 한 모금으로 입을 축이고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준 노래 가을 사랑을 들어보면 어떨까 마는, 나는 가을 사랑은 싫어 라고 답장을 보낸다고 해도 여름은 가고 가을은 오는 걸 어찌 싫다고 말하랴~ 나도 무얼 접어야 할 것 같아 가슴이 적막하기만 한데 귀뚜리 한 마리가 깡총 문덕을 넘어든다. 그 찬란한 여름, 마음껏 풍요를 만끽하고 이젠 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 안을 엿보는 귀뚜리의 신세가 가엽다 생각하니 이 밤 귀뚜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적막하기 그지없다.
세상이 잠들어야만 들을 수 있는 춤사위의 옷깃 스치는 소리를 듣노라니 조촐한 법당 앞마당에 진하게 드리운 오동나무 검은 그림자가 달빛이 희면 그림자는 더욱 검고 짙어지는 이치를 가르쳐 준다. 번뇌가 클수록 대자대비의 은총이 더욱 두터우리라는 깨달음으로 고요한 이 밤 춤추는 여승의 옷깃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조지훈님의 시 승무가 이 글을 여기서 맺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