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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5.18광주사태’를 다룬‘택시운전사’를 지난 13일 직접 관람한 후 23일 송영무 국방부장관에게 80년 ‘5.18-27일까지(광주민주항쟁, 광주사태)’전쟁같은 국가전복 반란 진상규명을 다시 하도록 특별 지시했다. 바른정당은 유보하나 자유한국당 등 야 3당도 찬성하고 있는 등 ‘특별법(재기수사)’ 통과가 기대된다.
김영삼 문민정부 당시 국회에서 95년 12월 ‘5.18 광주민주화 진상규명 특별법(공소시효 만료로 인해)’ 제정됐다. 즉시(12월 2일) 검찰(특별수사본부)은 79년 ‘12.12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공관을 습격 강제 체포한 내란수괴 및 80년 5.18 광주사태 국가전복 등)’은 전두환을 고향 합천에서 긴급체포했다. 전두환이 1995년 12월 3일 군형법상 반란수괴, 불법진퇴, 지휘관 계엄지역수소이탈, 상관살해 및 미수, 초병살해 등 6개 혐의로 안양교도소에 수감했다.
신군부(하나회)의 5.18 국가전복 수죄, 반란 혐의 등으로 전두환과 노태우, 장세동, 정호용 등 육사출신 ‘신군부’가 광주사태를 주도한 혐의로 20명 가량 재판을 받고 전두환 무기징역과 노태우 22년 등 국가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았다(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후 김영삼대통령에게 특별사면 요청으로 석방됨).
그후 87년 전두환 대통령(제11대- 12대)이 물러나고 국회에서 광주사태(80년 5.18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렸으며, 그때 명패를 던지며 강력 항의했던 노무현 의원은 강직한 이미지로 부상했고 2002년 12월 제16대 대통령(2003년 2월 취임)에 당선됐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광주사태에 큰 관심을 가졌으나, 퇴임후 2009년 5월 23일 그의 고향인 경남 김해(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서거했다.
1979년 10.26 사건(부하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권총으로 박정희 암살 제8대-9대 대통령(장춘체육관 전국 대의원 간접선거)을 지내며 무려 약 18년간 ‘초헌법적 긴급조치(국회제정 법률 아님)’를 남발하며 군사통치를 했다. 72년 국회를 무시하고 ‘유신헌법’제정으로 영구집권을 획책한 박정희가 사망한 뒤, 같은 해 전두환(박정희와 같이 장춘체육관 간접선거) 등 ‘신군부(하나회)’는 최규하 대통령을 협박하며 우리나라의 ‘정치적 실권자’로 급부상했으나 미국조차 묵과했다.
신군부는 김대중을 주적으로 보고(71년 신민당 후보로 공화당 박정희 후보와 대선에서 경쟁-사실 부정투표로 박후보 당선) 계엄령 선포즉시 투옥후 사형선고를 했다. 김대중은 73년 일본에 갔다가 납치돼 현해탄 바다에 수장 전 미국정찰에 적발돼 회생했다(2002년 일본에서 ‘KT’로 개봉됨). 또 김영삼과 김종필 등 정치인과 재야인사들 수천 명을 감금하고 군 병력(탱크)으로 국회까지 봉쇄했다.
80년 5월 18일 광주 대학생들은 “김대중 석방, 전두환 퇴진, 비상계엄 해제”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87년 ‘6.10국민항쟁’이 일어나 ‘대통령직선제와 언론자유화’ 조치가 발표됐다(노태우 대통령 초기, 신군부의 항복, 작년 최순실에게 국정농단을 시킨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와 유사한 평화적 운동).
전두환과 노태우 휘하의 신군부는 부마민주항쟁(79년 10월 부산 마산항쟁) 때처럼 광주의 민주화 요구 시위도 강경 진압하면 잠잠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공수부대 등 계엄군을 동원해 탱크와 소총 헬기 등 무고한 국민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김대중 주도했다”며 ‘빨갱이?’라고 음해 모독하며 무력으로 진압했다.
직접 사망자 165명, 후유증 사망자 376명, 행방불명자 65명(암매장 추정), 부상자 3139명 등 총 사상자 1,589명 사상자가 발생했다. 광주사태 첫 외국 보도는 신변위협을 감수하며 광주현장에서 비디오로 촬영했던 ‘독일기자(헌츠페터)’국영 3방송에 이어 일본 NHK, 미국 CNN, 영국 ITN 등 세계로 전파됐다. 국내 보도는 당시 정두언 KBS 보도국 차장이 보도한 직후 기자 등 130여명이 집단해고 당했다.
특히, 천주교 광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제작한 ‘그날이 오면-즉 5월의 봄?’ 비디오가 전국으로 돌아 모든 국민들이 참혹한 현실을 뒤늦나마 알게되어 전국(국민)이 발칵 뒤집혔다. 87년 12월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과 김영삼 야당후보 단일화 실패로 신군부 출신으로 국민 생명을 짓밟은 노태우 후보가 이외로 당선됐다.
문 대통령의 ‘5.18 진상 재규명 특별지시’는 당시 공군에 출격 대기 명령이 내려졌고 전투기에 공대지 폭탄을 장착하고 이를 준비했다는 당시 전투기 조종사들의 증언을 들었다. 당시 신군부가 광주시민들을 심지어 ‘베트남’처럼 학살을 자행했다는 내용의 ‘미국 국방정보국(DIA)의 2급 비밀문서’가 최근 발견됐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광주 전일빌딩을 찾아 계엄군 헬기가 공중에서 정지상태로 시민들에게 M-60 기관총을 난사한 탄흔 등을 살피며 진상조사를 약속했다. 대선 때는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이나 인권침해사건 등의 완전한 진실규명 추진과 과거 국가 잘못으로 인해 희생당한 피해자, 유족에 대한 배상 검토” 등을 공약했었다. 문 대통령은 당선후 참석했던 올 ‘5.18 37주년 기념식’에서 “완전 진상규명은 정의의 문제이자 국민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이라며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이고 헬기사격까지 포함하여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 내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5.18 광주사태 관련 각종 폭로가 이어지자 문 대통령은 진상규명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조성됐다’고 판단하고 특별지시에 나선 것이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제1야당 자유한국당까지 광주사태 진상 재조사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진상규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편, 더블어민주당은 ‘국방부 특별조사단’과 별도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특별위원회’ 구성하기로 했다. 특히 국민의당 소속 최경환 의원은 정부 차원에서 5.18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재조사할 수 있도록 ‘5.18 진상규명 특별법’을 발의한 상태여서 광주사태(5.18)을 둘러싼 극비리에 감춰진 진실이 드러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