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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새로 발견된 일본 사료를 통해본 독도의 진실
김문길 교수  |  sd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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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6  1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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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국 독도를 정복한 이사부(異斯夫), 17세기 안용복과 박어둔의 역할

신라지증왕13년 우산국을 정복한 이사부는 울릉도와 독도의 시조이다. 그가 없어더라면 울릉도와 독도는 누구의 땅이 되었을까. 그는 울릉도와 독도의 시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사부기념사업회도 조직되어 오늘의 행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도를 지키는 국민의 의식이 날로 높아져 간다. 독도 연구도 많이 하고 독도강연을 하는 분도 더러 있다. 그러나 독도를 연구하는 분들은 주로 우리나라 사료를 가지고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나라 사료는 일본인들이 믿으려 하지 않고 있다. 세계인들도 인식하는 데는 그다지 높지 않다. 일본인이 만든 고지도와 일본정부가 만든 문서는 일본인들이 높게 평가하고 인증하고 있다. 필자는 20여년간 일본에서 독도를 연구했고 일본인이 제작한 고지도 고문서를 발견 연구하여 독도는 조선땅이라 강연하고 있다. 많은 사료를 찾아 보도하고 연구했다. 그래서 국가 보훈청에서 독도를 강연하도록 국가 교수로 인명받기도 했다.

1)독도는 1417년에 空島정책
우리 조정은 울릉도와 독도에 사람이 못살도록 공도정책을 쓰기 때문에 한때는 우리 선조가 살지 안했다. 일본왜구들이 들어와 식량과 물건을 훔쳐가고 우리 조선인을 죽이고 생포해가기 때문이었다. 이때에 왜구들이 많이 들어와 울릉도 독도에 와서 살고 고기를 잡았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많이 방출한 시기는 왜구들이 난립한 고려시대 부터 그 다음은 임진왜란 때 그 다음은 일제강점기였다. 일본에 소장한 우리문화가 74,434점이나 된다(필자가 연구발견한 리스트 만).

지난 2013년 1월20일 대마도에서 도굴꾼들이 훔쳐온 신라 불상 고려관음보살상 2점도 왜구가 우리나라에서 훔쳐 간 문화재이다. 고려불상은 충남서산 부석사가 1330년에 제작한 것이고 왜구가 약탈한 것이라고 추적한 문서를 발견하여 지난 2017년 1월25일 대전법원에 문서를 필자가 증인도 했다. 법원은 불상을 부석사로 돌려주라는 판결이 나왔다.

2)공도정책에 일본인이 울릉도와 독도에 살 때 안용복, 박어둔이 독도를 지켰다
안용복은 부산수영성 노군으로 일본어가 능통했다. 박어둔은 울산사람으로 염전을 하고 소금장수였다. 두 사람이 1693년 울릉도 독도에 가서 일본인을 쫓아내려 했으나 일본인이 너무 많아 오히려 일본에 납치되어 갔다. 일본에 간 두 사람은 인슈국(현:시마네현)통치자 마쓰타이라신타로(松平新太郞)께 독도(죽도)는 조선땅이라 했다. 마쓰타이라는 두 사람의 거짓없는 말이라 일본어선이 못들어 가도록 금지령을 내렸다. 이 금지령은 300여년만에 필자가 발견했다.
이 뿐인가 당시 일본막부가 공인해준 지도학자 하야시시혜이(林子平)은 독도( 죽도)는 조선이 소유하는 땅이라 기록된 지도도 그린 것이다. 이 지도가 300여년 간 일본에 있어도 찾지 못했으나 필자가 찾아내고 보도했다.

당시 일본막부에 종사하는 많은 지도학자들은 『조선지도』를 그릴 때 독도를 우산도라 기록하고 대마도도 조선땅 김해에 속한 것이라 김해에 붙여 그린 지도이다. 그리고 ‘일본해’가 아니고 ‘동해’라고 기록한 것이다. 이 지도 도 300여년만에 필자가 발견했다.
이런 지도와 고문서를 만들 때 안용복, 박어둔이 일본에 가서 조선땅이라 증언했기 때문이다. 안용복,박어둔 두 인물은 참으로 우리역사에 기리 남겨야 할 인물이다. 두 사람이 더 살아 있었다면 대마도도 찾았을 것이다.

3)마쓰타이라 신타로 통치자는 독도에 들어가면 사형까지 처해
안용복,박어둔이 독도를 지킬 때 일본어선이 자주 들어와 고기를 잡으니 일본통치자도 금지령 후 밀업자들을 색출하여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이 문서도 지난 해 필자가 발견하고 연구 보도 했다. 사형당한 어부는 하치우에몬(八右衛門)이었다
아치우에몬은 사형당할 때 울릉도, 독도(竹島 松島) 양섬에 고기가 많으니 일본어선이 고기를 잡도록 유언까지 하고 사형당했다.

4)1905년 러.일전쟁시 독도 침략
독도 침탈은 러일전쟁 때였다. 일본군이 점령하고 전쟁을 치뤘다. 국력이 약한 일본이 대국인 러시아를 이긴 것은 독도를 먼저 침탈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독도에 군사 기지를 만들고 러시아군이 들어올 때 먼저 공격했기 때문 이었다.
1905년 2월12일 일본외무성이 “독도를 죽도라 하고 일본시마네현 오끼섬 소관으로 하라”라는 훈령이 내려졌다. 훈령이 무엇인가. 일본 내각들이 의논하고 외무성이 내린 것이다. 훈령은 관보에는 없다. 관보에 없는 것은 국제법에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5)독도 침탈은 오끼섬(隱岐島)에 어부가 외무성에 편입 신청
오끼섬에 어선회사를 차린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四郞)는 독도에 고기가(물게)많은 것을 알고 외무성에 찾아갔다. 외무성에 갈 때 독도(죽도)는 「조선에 속해 있으니 조선국에 어떻게 허가를 신청하면 되는가 하고 문의했다. 외무성 직원이 조선땅이지만 시국상 또는 가까운 일본땅으로 일본외무성에 신청하라했다.」(인터넷에 김문길교수로 검색) 나카이 요사부로는 그런가 하고 외무성에 신청했다. 
나카이가 최초로 한국땅으로 신청할까 했다. 그러나 외무성이 러일전쟁이 임박하자 신영토 죽도는 일본영토로 훈령을 내렸다.

6)독도편입은 1939년 4월24일 정식 편입했다는 문서 발견
일제강점기 대한제국은 속국이 되여 세계 식민지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비참한 시기였다. 그때 슬그머니 남몰래 일본땅으로 만들어 놓았는 것을 필자가 외무성 비밀문서실에 보관된 것을 발견 하고 보도했다(2016년 8월15일).
문서를 보면은 ‘오끼섬 島議員들이 시마네현장과 의논해서 소와 14년 4월24일(1939년)만장 일치로 편입했다’라고 기록한  문서이다.
편입할 때 오끼섬 주민들은 장차 일본이 패전해도 독도는 돌려 줄 수 없다는 예측을 가지고 했던 것이다.

편입이 정식으로 1939년이라면 일제강점기이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해서 한국식민지를 돌려줄 때 당연히 독도도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서를 모르는지 또는 무시하는지 1910년 한일합병전에 독도(죽도)는 일본영토로 했으니 돌려 줄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이 뉴스가 나가고 우리나라 외무성에 한 직원이 귀중한 문서라 하고 사료를 부탁해서 우리나라 외무부에 보냈다.이 문서뿐만 아니라 필자가 연구 발견한 수십 건은 보도시 외무부로부터 연락이 있어서 보낸 적이 있다

7)일본해군사령부에 독도란 이름으로 아직 보관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시 일본은 전쟁준비에 모든 국유지는 해군진수부(사령부)로 편입시켰다. 1940년에 해군사령부는 오끼섬 주민들이 편입시킨 독도(죽도)를 받을 때 토지(島名)명을 죽도가 아니고 독도(獨島)로 받아 지금도 외무성 문서에는 독도로 명시 되어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필자가 문서를 입수할 때 독도를 사인펜으로 지운 문서를 받았다. 원보를 이미 입수하고 있는데 독도로 기재된 것을 알리기 싫어서 일부로 지운 것을 받았다.

8)일본 정부에 술책
이렇게 독도는 우리땅이란 일본정부가 만든 문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결  같이 독도는 일본땅이라 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은 영토 문제를 두고 보수정권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지금 아베정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다 보수정권을 장기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국민들이 따르고 있다. 이유는 북한이 핵무기를 자랑하니 일본국민이 놀래서이다. 아베정권이 싫든 좋든 간에 따라야 할 운명이라 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국민들의 정서를 한 다발로 묶어 나가기로 온갖 힘을 쓰는데 영토문제를 제 1순위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독도문제, 중국은 센카쿠섬 문제, 러시아는 북방 섬문제 등 각 나라와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니 영토문제를 제일 큰 이슈거리로 잡고 있다.

둘째, 일본은 2세들의 교육목표는 영토를 빼앗자는데 있다.
패전이후 일본 젊은이들의 정신은 상당히 나태해진 상태이다. 이들의 국가관이 희박한 것을 안 정부는 일본정신을 다시 심어주기 위한 술책을 쓰고 있다.  
그래서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땅이다. 한국이 무단 점령하고 있다. 어서 빼앗자하고 기록하고 국내외에 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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