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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뇌물죄 등으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형사공판을 받았다. 반면, 이날 오후에는 경남 김해시 봉화마을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모식이 있었으며 문 대통령이 참석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운명이 희한하게 엇갈린 날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에 이어 올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수사본부에 이어 박영수 특검(특별검사), 그리고 헌법재판소에 출석하겠다고 약속하고도 전혀 지키지 않았다. 특히 23일 첫 형사공판에서 40년 지기 인연을 가진 최순실씨와 나란히 앉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청와대 및 정부 고위 인사 20명이 구속됐다.
당시 매주 토요일 저녁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시위(항의집회)에 수많은 인파가 참석했다. 그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야당인 더블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2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많은 표차로 따돌리고 41%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리고 조기 대선으로 5월 9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에 당선 취임했다.
이로써, 정통 야당출신으로 97년 12월 제15대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2002년 12월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이 나란히 당선됐다. 그러나 여당출신으로 2007년 12월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2012년 12월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이 나란히 당선됐다. 지금까지 97년부터 20년(1대 임기 5년) 동안 야당 10년과 여당 10년에서 또 다시 야당 5년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경남거제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만 64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에서 변호사 활동을 같이 하며 인연을 쌓았다. 그후 노 전대통령이 당선된후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으로 근무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후 2009년 검찰수사 당시 고문 변호사였다. 때문에 우병우는 물론 여당에서 검찰총장을 지내고 국회의원과 법사위원장이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우연찮게 문 대통령과 같은 경남 거제출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인 ‘아이러니(우연과 악연)?’를 살펴볼까 한다. 2003년에 취임해 2008년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간 불거진 태광실업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됐다고 당시 야당과 언론들이 공격했다. 이명박 정부 검찰(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로부터 수십억을 받은 의혹이 있다며 소환조사를 받았다. 특히 박근혜 전대통령은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때 한나라당 대표였다.
이명박 정부때 검찰조사후 서거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명은 2009년 5월 23일 이른 아침 비통하게 갈라졌다. 자신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화마을에 있는 속칭 ‘부엉이’ 산위에서 투신 자살한 대사건이 일어났다. 특히 ‘사람사는 세상?’을 국정과제로 삼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장(장례식)’은 그의 억울한 죽음을 안타까워하던 수백만 국민들의 지지 속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런데, 당시와 지금의 정치현실을 비교해 보면 우연치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의혹 조사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담당 수사검사는 국민들의 비난을 받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우병우 민정수석이었다. 우병우 전 수석은 사실 검찰분야의 지휘봉을 잡고 최순실 국정농단을 초래한 장본인으로서 검찰조사를 받았으나 ‘검찰(동료검사)의 제식구 감싸기?’로 벗어났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검찰개혁 신호탄’으로 박영수 특검에서 수사팀장으로 활약했던 윤석열 대구 고검(고등검찰청)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서울지방검찰청)에 승진 임명했다. 그는 최근 특검과 검찰이 두 번씩 소환조사하고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연루자 20여명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우병우 사건을 재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