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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제주도 유람선인 청해진소속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는 대사건이 발생했다. 세월호는 안산시의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주요 구성원을 이룬 탑승인원 476명을 수용했다. 이 사고 인해 미수습자 9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했으며 생존자는 172명이다.
생존자중 절반 이상은 해양경찰보다 약 40분 늦게 도착한 인근지역 어선 등 민간 선박에 의해 구조돼 정부의 무사안일(일명, 컨트롤 타워)과 해양경찰의 무책임성을 입증하고 있다. 세월호는 3년 동안 인양이 지연되다가 지난 3월 10일 제18대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되고 12일 후인 3월 22일부터 인양이 시작됐다. 이어 본 인양이 시작된 세월호는 4월 11일 목포신항의 육상 거치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참사 1091일 만에 인양이 완료됐다.
이어 3월 23일 오전 3시 45분경 세월호 선체의 스태빌라이저(선박 양측에서 좌우 균형을 잡아주는 장치)가 처음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오전 4시 47분께 해저 면으로부터 22m까지 도달하면서 세월호의 녹슨 선체가 육안으로 확인돼 침몰 1073일 만에 세월호의 첫 모습이 드러났다. 3월 24일 오전 11시 10분경 세월호는 목표 높이인 수면 위 13m까지 올라왔다.
지금 세월호 미수습자를 찾기 위해 수색하고 있으나 4명만 유골을 발견하고 아직 5명은 오리무중이다. 미수습 가족과 부모들의 애끓은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국민들의 많은 지적과 큰 비난이 제기되는 세월호 침몰 사고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 일부만 밝혀졌다는 점이다. 304명이 꽃다운 어린학생들의 영혼이 함께 뭉쳐 움직였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운명도 갈라 놓았다.
세월호는 ‘우연’하게도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검찰조사가 예정된 3월 마지막 주에 인양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는 세월호가 인양 시작 하루전인 3월 21일 오전 9시35분부터 시작해 밤 11시 40분까지 이어졌으며 모두 14시간의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3월 30일 법원(서울중앙법원)에서 영장실질 심사를 받고 31일 새벽에 구속됐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세월호 침몰 당시 행적 7시간에 대해 일정을 밝혔으나 대부분 허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검찰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람다운 세상?’과 같은 의미인 ‘나라다운 나라?’를 국정 목표를 세운 ‘현 문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세월호와 박 전 대통령’의 악연, 세월호와 박 전대통령의 우연을 보듯, 인간(사람)은 역사의 흐름을 절대 비껴나갈 수 없는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