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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고향은 있다. 물고기도 자기가 태어난 곳을 향해 목숨 걸고 먼 길을 여행하고, 그곳에서 산란한 뒤 생을 마감한다. 원숭이는 죽을 때 자기가 자란 큰 나무 밑에 죽어 거름이 되어 은혜를 갚는다고 한다. 우리도 죽음 앞에 빚진 것이 있다면 어떤 모양으로든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에게는 귀향본능이 있다. 설날과 추석 명절 연휴 기간에는 약 2800만 명이 고향을 찾아 이동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 귀성 행렬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귀향본능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그 고생을 하면서 고향을 찾을까? 고향엔 내가 자란 정이 있고,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 놀던 친구가 있다. 내가 뛰놀던 놀이터가 있고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과 동네 어른들이 계신다. 아니 지금은 고인이 되어 안 계신다고 해도 어른들의 위엄과 흔적들이 남아 우리의 그리움을 채워준다. 서편에 해가 뉘엿뉘엿 질 때 공원 벤치에 앉아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한숨짓는 노인들을 볼 수가 있다. 춥고 어두운데 왜 여기 계시냐고 물으니 돌아갈 집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집이 없다기 보다는 집에 가봐야 여기 있는 것보다 나을게 없다는 말일 것이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 죽은 후에 삶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누구나 저승이 있다고 한다.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하는 말엔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는 말이다. 최고의 쉼은 죽음이다. 더 이상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갈일 없고, 자식걱정 나라 걱정 할 일이 없다. 한해살이가 끝나면 조용히 사라는 곤충이나 미물들도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미련 없이 사라지지만 그러나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자기의 씨를 뿌린다. 텃밭 무 잎이나 배추 잎을 보면 좁쌀처럼 빽빽하게 알을 실어놓았다. 땅을 파면 굼벵이가 나온다. 여기저기 생명의 실체들이 숨겨져 있다. 또 다음 세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물며 인생에 다음 세대가 없겠는가?
환생은 또다시 무엇인가로 태어난다는 불교의 내세관이다. 그렇다 반드시 내세가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저승이라고 하고 극락이라고도 한다.
상식적 인생관은 인간의 생명은 어머니 뱃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시작하여 땅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한 번뿐이라고 생각한다. 죽으면 그만 이라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일생관이라 하겠다.
기독교는 영혼의 불멸과 내세의 존재를 말한다. 생명은 두 번 있다고 보는 것이기에 이생관으로 부르고. 불교는 다생관에 취한다고 한다. 즉, 사람의 생명은 과거·현재·미래를 통해서 윤회를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어머니 뱃속에 있기 전에도 나는 존재해 있었고 죽고 난 후에도 영원히 존재하여 자기가 짖는 행위에 따라 전생에서 금생으로 금생에서 내생으로 그칠 줄 모르는 사이클처럼 윤회 전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돌아갈 본향은 내가 온 곳이다
어떤 곳에 부자가 살았다. 그 집 앞에서 구걸하는 거지도 살았다. 두 사람은 어느 날 둘 다 주검을 맞았다. 그런데 저승으로 가는 길에서 부자로 살던 사람이 너무나 목이 타 죽을 지경이었다. 위를 보니 자기 집 앞에서 얻어먹던 거지가 아브라함의 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부자는 잘 아는 터라 거지에게 얘야 내가 목이 타 죽게 되었으니 네 손가락에 물 한 방울만 찍어 내 혀를 적셔 달라고 애원을 한다. 그럴 수 없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구릉이 있어 오지고 가지도 못합니다. 그러자 부자는 ‘그렇다면 우리 형제 다섯이 있으니 네가 가서 여기 오지 말라고 전해다오’라고 부탁했다. 거지는 아닙니다. 내가 아니라도 형제들 주변에 여기 오지 않는 방법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그분들의 말을 들으면 된다고 말을 받아냈다.
부자는 ‘아니다. 우리 형제는 완악하여서 절대로 그 분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니 네가 가서 말하면 들을 것이다’라고 또다시 부탁했다. 하지만 거지는 ‘아닙니다. 형제들 주변에서 말씀하신 그 분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내가 가서 말한다 해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토를 달아 말해버렸다. 그렇다. 인생의 끝은 죽음이 아니다. 반드시 또 다른 세상이 있다. 열심히 살면서 최선을 다하는 게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삶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혼자 살고 싶다고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고, 죽어서도 나의 남은 몸을 누군가가 수습해 주어야 한다. 미물도 겨울이 오면 겨우살이를 준비하지 않는가. 곰은 겨울잠을 자기 위해 실컷 먹는다고 한다. 겨울잠을 자기에 충분한가를 시험하기 위해 높은 나무에서 떨어져 본다. 떨어질 때 엉덩이가 아프면 아직 덜 준비가 되었다고 계속 먹고 다시 시험을 해본 뒤에 엉덩이가 아프지 않으면 겨울잠에 들어간다고 한다. 사람이 곰만 못해서 되겠는가. 귀향을 통해 인생을 다시 한 번 깊이 성찰하면 좋겠다. 내가 마지막 돌아갈 본향이 어디이며 돌아갈 준비는 되었는지 아니면 갈 곳을 정하지 않고 생각 없이 쫓기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자. 본향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인생을 충실하게 가꾸고 결실을 거두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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