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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인철 동해기상대장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기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설은 BC 6년, 고구려 유리왕 14년에 내린 눈이다. 기록을 보면 “그 해 겨울 11월에 부여의 왕 대소가 군사 5만으로 침략하여 왔으나 큰 눈이 내려 사졸(士卒)들이 많이 얼어 죽었으므로 돌아갔다.”라고 되어있다. 적설량은 알 수 없으나 무고하게 죽어간 군사들을 생각하면 대소와 대설이 모두 원망스럽기 그지없다. 이후 대설기록은 가뭄에 비하면 많지 않지만, 지금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대설도 잦아지고 있다.
기상청 특보기준을 보면 하루 동안 5cm 이상 눈이 내릴 것으로 예상되면 대설주의보를, 20cm이상 눈이 내릴 것으로 예상되면 대설경보를 내린다. 첫눈 예보에는 미소를 띠는 그들이지만 대설특보에는 얼굴빛이 어두워진다. 그 만큼 눈의 양을 예측하기란 여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 최승호는 ‘대설주의보’를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이라고 표현했다. 질퍽거리는 도로에 짜증나는 교통체증, 추돌사고, 이면도로에서 발생할 갖가지 난감한 상황들이 대설을 낭만적 추억에서 멀어지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은 도시에 국한된 이야기다. 농사에 있어서 대설은 효자다. 특히, 벼와 보리농사에는 대설만한 효자가 없다.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농사에 풍년이 들고 따뜻한 겨울을 날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눈은 봄 가뭄 해소와 산불을 예방해주는 최상의 버팀목이다. 대지가 머금고 있던 눈은 곧 논물이 된다. 저수시설이 부족하고 농업용수 공급이 원활하지 않던 시절에는 눈이 다음해 풍작까지 끼치는 영향은 지금보다 막대했다.
이러한 효용은 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다. 보리밭에 눈은 참으로 반가운 손님이다. 겨울에 보리순 위에 내린 눈은 냉해를 막아준다. 보리가 자랄 때까지 포근히 덮어주는 도톰한 솜이불인 셈이다. 요컨대, 대설주의보나 대설경보는 풍작예보인 것이다. 그러하니 눈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지 말고 강아지처럼 방긋 웃으며 큰 눈을 맞아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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