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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국민 모두가 알지만 1919년 상해 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서 비롯됐다. 또 1948년 ‘제헌’부터(45년 조국해방후 미군정이 국가 안정화를 시키고 우리나라로 이전함) 일제의 국권찬탈로 중국 상해로 건너간 김구 선생(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 주도했다. 특히 안중근 의사와 안봉길 열사의 사형 등에 항거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선언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1948년 제정 공포된 후 87년 제9차 개정을 거쳤다. 우리헌법 전문은 1960년 이승만 4선용 폭정으로 ‘4.19 시민혁명(학생의거)’으로 자유당을 전복시켰다. 헌법 전문(헌법의 기본이념)은 ‘4.19민주이념계승’ 정신을 천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많은 민족적 수난을 겪었다. 조선시대도 조정(즉 정부)의 부패와 무능력으로 인한 1894년(고종 31년) ‘동학농민운동(준혁명)’이다.
이어 고종은 구한말(구 한극의 의미) 일본제국의 ‘임오군란(1982년 신구식 군대중 소외받았던 구식 군대가 경복궁 습격후 흥선대원군 통치 옹립불발 사건), 갑신정변(1984년 일본의 사주를 받은 급진 개혁파의 고종과 명성황후 경복궁에서 경우궁 강제 이궁사건), 갑오개혁(1985년 약 2년간 추진된 3차례 개혁, 즉 조정 쇄신 정책), 을미사변(1985년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관파천(을미사변후 86년 고종이 약 1년간 러시아 피신 사건)’ 등 구한말은 참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1392년 이성계(태조)가 조선을 건국했으나 조선은 중국(당시 명, 청 나라)의 지배를 받는 종속국가였다. 이에 고종은 1897년 러시아(아관파천)에서 돌아와 강대국 중국, 러시아, 일본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조선건국 약 500년만에 ‘황제국가’를 세웠다. 바로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세우고 연호를 ‘광무(光武)’라고 이름 했다. 대한제국은 1897년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 ‘국명’의 정통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언제이고 ‘대한(大韓)’의 근거는 무엇인지 분명해 진다. 특히 정부수립과 관련해,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기존의 ‘검정교과서와 정부가 작년도에 새로 만든 ‘국정교과서(대한민국 수립, 정부가 빠짐)’가 서로 엇갈리고 있다. 앞으로 신구 역사 교과서를 배우는 중고생들이 불안하다. 어느 정권이라도 역사를 찬양(과장))하거나 왜곡(변질)해서는 절대 안된다.
역사는 있는 사실 그대로 기록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이는 일본의 독도 망언(자기 땅)과 위안부 강제징용을 비교해 보면 아주 간단하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조선말의 대한제국)’의 법통(국정교과서에 반드시 ‘정부’를 삽입해야)이다. 1919년 상해임시 정부에서 연유한 ‘대한민국’이 정답이라는 얘기다. 왜냐하면, 1987년 조선(구한말) 고종이 건국한 ‘대한제국’의 역사전통을 계승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끝으로, 여야 정치권은 역사교과서를 놓고 ‘만지작’ 거리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논란을 야기하지 말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원칙을 후손들에게 전해 주어야 할 의무(책임)가 있다. 지금 박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와 헌법재판소 심리는 17~18차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딛고 우리나라가 잘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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