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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봄날이었다. 그러니까 약 40년이 되어가는 필자의 젊은 시절을 떠 올려 본다. 영월군과 정선군을 잇는 백운산 두위봉 산등성을 나는 힘이 들어 있지 않는 발걸음으로 한발 한발 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운송하는 신작로를 걷고 있을 때였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철쭉 군락지에서 꽃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고 나도 저런 사진기를 들고 자연을 앵글에 담아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한 이후부터 사진에 관심을 두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사진은 빛을 찍는 작업이라고 예술의 극치를 말해 준다는 글도 읽어보았으며 촬영기법도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그려본 날도 많았다. 아내 눈치를 살피며 값비싼 카메라를 구입하였으나 수동식 카메라의 작동법이나 조화를 빚어내는 기술이 전무한 탓에 이유 없는 필름만 소비하면서 10여 년을 원망하며 시간을 흘러 보낸 과거의 시절도 있었다.
비들기호 열차 안에서 월간지 책을 잠시 빌려보는데 사진촬영 기법에 대한 글이 눈에 보였다. 사진기술은 많이 찍어봐야 머릿속에서 자유의 날개를 달고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다는 글이 나열되어 있었다. 즉, 필름을 아끼지 말고 이것저것 관계없이 원하는 가치를 촬영으로 찾아보라는 내용들이였다. 지금처럼 승용차가 있는 시절도 아니기에 안방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향해 셔터를 눌러보았다. 모델들이 입고 있는 수영복이나 한복이 전등불에 반사되어 밀가루 반죽처럼 제멋대로 현상되어도 매일같이 반복해 촬영을 해보았더니 아픔만큼 성숙해지기 시작했다.
자연을 담는 순광 보다는 오히려 역광이나 측광을 이용하여 멋의 가치를 앵글에 담는 게 고수의 예술임을 그 때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해를 등지고 사진을 찍어야 사진이 예쁘게 나온다는 말을 들어 왔고 지금도 그렇게 카메라 렌즈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은 빛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작가의 글을 보고나서, 정면보다는 측면으로 비켜서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터득하기 위해 지금도 연습 중이지만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고견을 들어 본 날이 없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사람이 카메라만 들고 이러고저러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이다. 과거 직장생활을 할 때는 탄광의 역사를 조명해 두기 위해 손에 사진기를 들고 다녔지만 지금은 카메라보다는 작은 수첩을 지갑처럼 주머니에 넣고 메모해 두고 있는 것은 내 이웃의 가정이나 자신의 건강 그리고 차마 말 못할 인생사를 어렵게 상담하시는 지역민의 문제를 해결해 드리기 위해서다.
인간이 태어나서 성공을 위하여 한평생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 게 곧 세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모두가 그것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도 다반사다. 반면 성공한 사람들은 분명, 무언가가 다른 점을 지니고 있는 것도 다반사가 아닌가 싶다.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과 태도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공은 목표가 되지만 종착역은 아니기에 지금도 고군분투 중
학창시절 교장선생님께서는 늘 꿈을 가져야 한다고 훈시하셨다.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꿈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는 훨씬 값진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그 꿈은 과연 어떤 인생을 바꿔주는지 아직도 우리는 모른 채 살고 있기에 생각하는 사람이 별생각 없이 하루하루 사는 사람보다 성공하는 비결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필자의 견해는 이렇다. 성공은 목표가 될 수는 있다고 하지만, 인생의 종착역은 아니라고 본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는 것, 과정은 힘들지만 이를 즐기는 것, 좋은 습관을 만들어 주어진 일에서 성과를 올리는 것, 이를 토대로 보람을 느끼고 주변의 인정을 받는 것, 성공이란 바로 이런 철학들의 결과물이며 그러한 삶의 자세를 잊지 않고 꾸준히 실천해 나갈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행복추구권은 인간의 기본권에 속한다. 나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며 함께 행복을 찾는 것도 삶의 행복이 아닌가 싶다. 혹시 나로 인해 남의 행복을 뺏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내가 너무 많은 행복을 누리고 사는지, 다른 이가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자랑으로 인해 상대적 빈곤감을 주거나 지나친 명품 일색으로 다른 사람의 기를 죽이고 있지는 않고 있는지 성찰해 보며 이웃을 생각해 줄 나이가 되었다.
목표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하지만 한번쯤은 뒤 돌아보며 고군분투를 멈춰 세우고 내 이웃을 위해 나의 인간애를 바치고 다시 뛰어 가는 자세가 행복을 담아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내일을 지펴간다.
청마 유치환은 행복을 이렇게 예찬했다.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고 시 구절에 옮기지 않았는가! 필자도 내 이웃을 위해 행복을 전도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탄광촌의 애환을 슬픔보다는 기쁨 속에 넣고 행복을 사랑으로 나누며 인생사를 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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