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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주논단/ 인연을 맺은 사람
이희탁 논설위원  |  lht47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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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4  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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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2호 2016년 12월 30일자

봄, 여름, 가을 그렇게 무던히도 성장하던 모든 생명체들이 이제는 나래 접고 겨울 속으로 조용히 발을 들였다. 그리고 우리는 나름대로 결실을 맺은 채 세월의 인연을 따라 곳곳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향기에서 삶의 행복을 꽃으로 피워보려고 어깨를 움츠린 채 하얀 백설에 묻혔다 봄을 기다리는 것도 인연에 있다고 불가에서 가르친다.

그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딸이 사위에게 사연도 까닭도 없이 매를 맞고 피멍을 안은 채 돌아왔을 때 “네 인연이 그러한 것”임을 강조하시면서 자식을 끌어안고 같이 눈물 흘렸다.
그래서 우리 옛 어른들은 인연을 참으로 소중히 여겨왔다. “인연이 아닌 게지” “인연이 닿지 않은 거지”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바라는 것과 달리 일이 성사되지 않았을 땐 체념과 좌절, 그리고 고뇌의 심연을 풀어내면서 마음속 응어리를 연으로 삭이며 자식 앞날을 걱정하시었다.

그랬다, 딸은 “팔자”를 탓하였지만 어머니는 굳이 인연 소치를 강조하셨다. 만약, 딸의 팔자가 비관이라면 어머니의 “인연”은 긍정이였다, 그것은 네 업이니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살라는 긍정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에서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 또한 이 세상의 인연이 다하여 다른 세상으로 먼저 간 것으로 여기며 가슴에 멍에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허전함과 애간장의 아픔을 손바닥으로 가슴 치며 마음 달래며, 인연을 달래며 하늘을 탓하거나, 남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식이 저승길에 장애나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부모의 마음에 숫 덩어리로 만들어 갈뿐이다.

소매자락만 스쳐도 오백생 인연 (五百生因緣)이라 했다. 한번 정해진 배필이면 천생연분이라는 인연관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의 특성인 순종과 끈기, 은근과 근면, 낙천과 소박은 정착되지 못했다고 본다. 가난과 역경, 불행의 삶을 인연으로 완충시키지 않은 채 액면 그대로 욕망에 순응하여 살아온 우리민족이다. 그런데 지금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풍조는 사라지고 있다. 오로지 나를 위한 삶, 나의 성취를 위한 삶 그것뿐이다. 내 가족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과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해 있었기에 생각지도 않았던 초대형 사고가 발생되어 지금까지 가슴 아프게 한다.

몇 년 동안 일어난 불행들을 보면 모두가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양심을 속여 가며 자기성취를 위한 삶에만 눈을 어둡게 하였기에 사회 곳곳에서 말도 되지 않는 사고가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소중해야 되고 “너”는 무시해도 된다는 것과, “너희”는 죽어도 “우리”는 배불러야 하고, “국민”은 배고파도 “대통령”은 부귀영화를 누려야 한다는 말을 만든다면 이것은 세속의 인연이 아니라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나 성취욕이 되는 것이다.

순연과 악연 속에 우리는 한 평생 희, 노, 애, 락으로 살고 있다.

세상사는 인연생기라고 했다. 즉 모든 것은 직접적인 원인을 말하는 인과, 직접적인 원인을 도와 결과를 낳게 하는 조건인 연의 결합에 의하여 생기고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사 모든 일들도 인과 연이 합해지면 일어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다른 것은 무시하고 내 것만 옳다고 자칭하면서 남을 무시한 채, 나만 홀로 성취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붕괴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일평생 살면서 겪는 희, 노, 애, 락의 원인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람과 물질의 관계에 있다. 이 둘 중에 우리를 무척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다. 나와 잘 맞고 조화를 잘 이루는 순연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와는 도무지 맞지 않고 불협화음만 생기는 악연의 사람도 있다. 이러한 순연과 악연의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한 평생을 희, 노, 애, 락 속에 살아가고 있다. 악연의 사람은 대하기 싫지만 계속 만나거나 상대해야 하고, 순연의 사람은 언제나 함께 하고 싶지만 뜻하지 않게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풀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을 계속 보고 싶지만 소슬바람에 흩어지듯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좋은 인연이라 믿었던 것이 나쁜 인연으로 바뀌기도 하고, 처음에는 나쁜 인연이라 생각했던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좋은 인연으로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연도 악연도 없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이치 속에 인연의 모습 또한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음은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들은 체험했을 것이다. 인연이기 때문에 바꿀 수 있고 인연이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가 대통령에게도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저물어 가는 병신년 한해는 여기서 모두 다 접어 두고 희망찬 정유년에는 좋은 인연들이 우리 곁에 달려오길 기원하며 금년도 척주논단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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