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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호 2016년 11월 4일자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은 그 인격도 고매할 것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성 추문에 연루된 문인 중에는 유명 소설가를 뉴스로 접하고부터 글을 쓰는 사람은 외로움을 타는 것일까란 생각마저 들게 했다.
술자리에서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성희롱을 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작가의 이름으로 소설 은교를 쓴 박범신(70)이었는데 작가는 소설과 현실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의 경험을 소설로 옮긴 것인지 의문을 남기고 말았다.
문제가 터지자 작가는 즉각 사과했는데 사과문이 눈길을 끈다. 스탕달이 그랬듯 살았고 썼고 사랑하고 살았어요. 오래 살아남은 것이 오욕∼ 죄일지도. 누군가 맘 상처받았다면 나이 든 내 죄겠지요. 미안해요∼ 아무리 소설가라지만 사과 하면서 까지도 멋을 부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필자 또한 기분이 찜찜해지고 있다.
가을은 마치 사과의 계절이라도 되는 양 요즘 우리 사회에 사과가 넘쳐 나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고개를 숙일 것 같지 않던 박근혜 대통령마저 500자도 되지 않는 원고를 1분 40초 동안 읽으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자고 나면 입이 쩍 벌어질 뉴스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더니 결국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다.
최순실 게이트는 거대한 빙산과 같아서 그 크기를 아예 짐작조차 하기 에는 어려운 문제다. 2년 전 국정감사 때에는 박영선 의원이 “문고리 3인방” 중의 한 사람을 불러다 놓고, “당신이 매일 밤 청와대에서 퇴근할 때 서류 보따리를 챙겨들고 어디론가 사라진다는데 도대체 어딜 가는 거며 그 보따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라고 질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 문고리는 횡설수설하였다. “제가 근무 중에 일이 다 끝나지 않아서 집에 서류를 가지고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박영선 의원의 추상 같은 질타가 있었다. “당신은 청와대의 서류를 집에 가지고 가기도 합니까” ‘문고리’가 변명하였다. “서류가 아니라 책이었습니다”라고.
쇠털처럼 까라놓은 의혹을 제대로 파헤치려는 검찰로선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 한점 부끄러움 없이 성심성의껏 수사하면 국민들은 위안이 될 것이다.
최 씨가 대통령의 연설문만 수정한 게 아니라 안보, 외교, 인사까지 손대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으니 조선 말기 명성황후의 비선 실세였던 무녀 출신 진령군(眞靈君)을 떠올리게 한다.
명성황후는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성난 민심을 피해 충주로 피신한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 어느 누구 하나 믿을 사람이 없어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당이 찾아온다. 무당이 환궁 날짜를 점쳐 줬는데 들어맞았다. 명성황후는 이 무당을 데려와 진령군으로 봉하고 극진히 예우했다.
명성황후의 정치 파트너는 정부 대신이 아닌 무당이였다
이때부터 명성황후의 정치 파트너는 조선 대신이 아닌 무당이었다. 진령군은 자유롭게 왕궁을 드나들었고, 수시로 임금과 왕비를 알현할 기회를 가졌다. 각종 국가 업무가 진령군의 뜻에 따라 이뤄졌고, 진령군의 힘을 빌리면 안 열리는 벼슬길이 없었다고 한다. 편전에서 조회를 열면 왕은 말이 안 되는 이상한 말만 했고, 밤이 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궐 담장을 넘어 들어왔다. 사관의 사초는 물론 국가 대소사를 적은 문건이 승지의 손을 거쳐 궁궐 밖으로 나갔다.
수렴청정 하는 대비마마는 눈물이 없었다. 백성이 죽어 나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조사를 그만두라며 서릿발 같은 교지를 내렸다고 역사가 말해주었듯이~~?
아, 먼 옛날이 아닌 바로 동방순실지국 얘기가 현대사회에서 역사를 쓰게 한다.
이거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박정희 독재 시절 밤의 대통령이 따로 있단 말은 들었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낮 대통령과 밤 대통령이 따로 있었다니 참으로 기가 차고 넘치고 있다.
이제 탄핵이니 하야니 하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는 판국이다. 참담한 심경으로만 말한다면 박 대통령도 국민들과 다르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트위터를 통해 부지런히 퍼 나르고 있는 어느 만화(만평) 속 대통령의 모습이 처연한데, 몇 마디 대사가 집단 패닉(panic)에 빠진 우리를 웃기게 한다.
순실아 자니..... 전화 좀 받아..... PC는 왜 버렸어..... ㅠㅠ 이제 어뜨케?
국민은 인터넷, SNS, 기타 매체를 통해 답답하던 가슴을 털어놓으면 된다. 탄핵하자, 하야하라 등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서 후련한 마음으로 다시금 이 조국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조심해야 한다. 정치권이 나서서 탄핵하자, 하야하라고 떠들면 대한민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김정은은 북 치고 춤추며 기뻐할 것이라고 김동길 석좌교수께서 부탁 한 글을 필자가 읽고 논단에 적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