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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호 2016년 10월 21일자
올 가을은 유난히 화려해 질 것 같다. 단풍의 화려한 빛깔은 물론이고 솔숲의 피톤치드도 만끽할 수 있어 차갑고 시원한 가을공기를 들이마시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며 자연의 품이 넉넉해지는 설악의 가을을 만나고 왔다. 자연은 다양한 빛으로 제 모습을 뽐내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안과 기쁨을 선물했다.
10월 한글날 동호인들과 46년 만에 개방한 남설악 만경대 둘레 길을 돌아보려고 새벽을 열며 출발하였으나 산길 입구에서부터 차단되어 끝내 원시림 만경대는 밟아보질 못하고 설악의 비경만 감상했다. 여름 내내 쏟아 부은 폭염 너머 숲에 호사스런 패션쇼가 강원산하를 타고 전국으로 남하하는 서막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산은 돌을 깎아 세웠거나 아니면 돌을 다듬어 눕혀 놓은 돌덩어리를 볼 수 있다. 산마다 들어서면 우선 내음에 속된 티가 없다. 산길은 유연하고 토종 수목들이 빚어낸 풍경, 봉우리마다 솟아 있는 기묘한 바위가 주는 미감,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을 보면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외국의 산보다 우리나라의 산이 다른 장·단점이 있다. 설악의 수목은 바위틈으로 뿌리를 내리고 웅장함을 보이고 그 뿌리로 서 있는 수목은 가냘프지만 잎새는 강하게 피운다.
사진으로 보는 외국 단풍은 달라 보인다, 쭉쭉 뻗는 뿌리와 같이 나무들이 크면서 가지도 굵다. 병충해에 몸부림친 흔적도 안 보인다. 붉다 못해 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그저 덤덤한 중간색으로 사진에 담겨 잎의 모양도 그저 그렇거니 하며 찌든 삶을 사는 사람의 얼굴을 보게한다.
그래서 외국의 단풍은 관광을 해야 하고 우리나라의 단풍은 관상을 해야 한다는 일화도 있다. 관광은 멀리서 전체를 한 눈으로 보는 것이고, 관상은 가까이에서 하나하나를 부분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그림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의 단풍은 여백이 많은 동양화이고, 외국의 단풍은 화폭을 가득 메운 짙은 서양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서양화는 눈을 가득히 채워주고, 동양화는 생각을 가득히 남겨주는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나라의 미가 곡선(線)이라는 말을 늘 해오고 있다. 한옥지붕 끝이 그렇고 여성들의 옷고름도 그렇다. 치마 자락이 그러하듯 선비들이 치는 난(蘭)이며 대(竹)를 치는 것도 모두가 멋진 선이다. 가을 단풍까지도 그 미는 선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전 강토는 굽이굽이 아름다운 곡선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문화를 곡선의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누가 그것을 지나친 예술적 표현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암절벽과 바위에 뿌리내리고 동해를 내려다보는 해송
백두대간 허리춤에 우뚝 솟아있는 설악산은 웅장한 산세와 붉은 단풍이 어우러지며 절경을 자랑한다. 설악산의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는 주전골 계곡 아래로는 오색약수를 마셔볼 수 있는 약수터가 유혹하고, 절경을 감상하느라 힘든 줄도 모르고 올라온 등산길에 잠시 쉬었다 가게 하는 설악의 골짜기. 산과 바다가 한 폭의 그림을 펼쳐내는 동해안 강원도의 푸른 바다가 보고 싶어 양양 8경의 하나인 하조대도 찾았다.
우뚝 솟은 기암절벽과 바위에 뿌리내리고 동해를 내려다보는 해송, 절벽 위에 세워진 정자의 풍취도 빼어났다. 하조대 입구에는 백사장이 넓은 하조대해수욕장이 있어 가볍게 거닐어 보니 꿈을 피었던 학창시절이 추억들이 파도를 타고 달려 왔다.
최정신 시인은 이런 글을 남겼다. 하조대 위, 해송이 흔들거리는 풍광이 내게 다가온다고 했다. 시인은 어쩌자고 흔들거리는 바람의 내력과 더불어 한 생을 오직 하나만을 보고 살아온 사람의 속 깊은 정과 우직한 사유를 인생에 빗대 전해 주었을까. 접질린 삶의 애환과 깊은 고독과 절규와 알 수 없는 속울음 소리조차 그대 앞에선 사치였다고 했던 그 바닷가에서 필자는 가을을 예찬하고 돌아 온 하루였다.
나는 단풍의 나라에서 태어나 해마다 단풍을 보고 여정을 가고 있지만 올 해처럼 만엽을 달고 올 긴긴 여름 폭서를 이겨낸 투지가 우리 한국인의 긍지로 보았기에 이제 곧 훨훨 털고 가려운 데 하나 없는 섣달의 수목으로 돌아갈 단풍잎에 연민의 정과 같은 안타까움을 놓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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