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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호 2016년 8월 26일자
순백의 인연
장 유 리 (삼척여고 1년)
“네 정의를 관철하고 싶다면 네 스스로 기어 올라와라. 그 때 까진 거짓이 진실이 되고, 사죄해야 할 자가 사죄 받는 것을 묵묵히 보는 것이 네 일이다.”
나를 감사원에 들어가, 그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책 속에 있는 한 마디이다. 소설의 이야기이면서도, 현실을 향해있는 날카로운 문체에 나는 한 동안 이 문장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을 수 없었다.
내가 감사원을 목표로 한 것은 이 문장을 읽기 전으로― 꿈을 꾸는 어린 소녀답게 ‘정의’하나 만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였다. 하지만, 그 꿈을 보기 시작한 이후,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상상 이상으로 내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거대했고, 내가 바꾸고자 했던 것의 뿌리는 훨씬 더 깊은 곳에 박힌 채 곪아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사회라는 어쩔 수 없는 공동체를 느끼게 한 사건은 어느 곳도 아닌, 학교라는 작고 작은 청소년들의 사회였다.
“요점은 단순 싸움이냐, 인격모독이냐, 이 말이지?”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학생자치법정이라는 이름의 이른바 ‘학생주도의 자율적 법정’이 있었는데, 기존의 학생자치법정과 달리 우리학교의 자치법정에서는 학생과 학생 사이의 분란 또한 다루고 있었다. 학생 자치법정에서 판사의 역을 맡고 있었던 나는 서기 역을 맡은 학생이 가져다 준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서류를 훑어보았다.
쉬는 시간에 한 학생이 자고 있는 학생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기에 귀찮아졌던 학생은 잠을 방해하지 말라며 언성을 높였었으나, 이 때 말의 내용이 상대 학생에게 모욕적으로 들렸으며, 이것은 경미한 학교폭력이라는 주장이 펼쳐지게 되면서 사건은 학생 자치법정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별것 아닌 단순한 또래 간의 싸움 같아 보일 수도 있었지만,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심화되어 가는 현대의 학교에서 모욕은 학교폭력과도 직관될 수 있는,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야 말았다.
“어이, 농담하는 거면 그만둬. 그거 진짜야?”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이냐? 진짜라고. 내가 들었어. 검찰 측 얘들이 자기들이랑 가까운 얘들한테 다 들었다는 식으로 증인에 서서, 무조건 욕이란 욕은 다 했다는 걸로 밀어 붙이라고 시키고 있었다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모의재판 이후로 처음 맡는 실전적인 법정에서 서로가 조금이라도 잘 하고 싶은 마음은 그 어떤 때, 그 누구라도 똑같을 터였다.
“그래서?”
나는 의자를 약간 뒤로 빼어서 등을 기대곤 책상 위 교과서 맨 아래 쪽에 꽂아둔 사건 보고서를 꺼내어 설렁 설렁 흔들었다.
나의 무심한 대답에 감정적인 친구는 눈에 불을 켜고 내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야! 넌 이번 일에 아무런 생각도 없는 거냐? 아무리 판사여도 그렇지, 네 사촌에 동생 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의 말이 사실이었다. 변호학생 측에는 내 쌍둥이 동생이 있었고, 원고 측에는 나의 사촌이 있었다. 마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을 것 이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무심하게 대답해야만 했었다.
감사원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그 꿈에 한 발자국씩 다가갈 때 마다 나는 내가 포기해야만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몇 번이나 깨달아야 했다. 처음으로, 정의라는 이상이 얼마나 냉정하고 가혹한 말인지를 알게 되었다.
“자치법정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정해져 있어. 검사 등에 가려운 것이 있다면 그걸 긁어내는 건 내가 아니라 변호 측이 할 일이야.”
비록 오지랖이 넓고 말이 많은 친구였지만 그래도 2년을 함께 지내온 사이였기에, 그녀는 순순히 나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가볍게 너 너무 ‘냉정하다’, ‘차갑다’라는 둥의 말을 내뱉었지만 옳지 않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학교에선 모두가 각자의 최선을 다해 준비한 학생자치법정이 개정되었고, 나는 학교에서 나누어 준 검은 판사복을 걸쳤다. 어른들의 눈에는 소꿉장난 같아 보일 지도 모르겠지만, 그 옷의 무게는 사건이 ‘모의재판’이 아닌 ‘실전’인 만큼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법정, 개정 이라는 법정경위의 소리에 맞추어 나는 지정된 자리에 나머지 두 명의 판사와 함께 앉았다. 친구의 말 대로 검사측이 준비한 증인은 서너 명이나 되었고, 그에 반해 변호 측에서 준비한 증인은 고작 한 명이었다. 법정에 대한 간단한 안내가 끝남과 동시에 검사 측과 변호 측의 화려한 논쟁이 시작되었고, 두 쪽 모두 시작은 논리 정연했다.
대략적인 사건의 틀이 생겨났을 때, 검사 측에서는 드디어 자신들이 준비한 카드를 꺼내기 시작했다. 증인들이 차례로 나와 피고에 완벽히 불리한 증언들을 하기 시작했고, 증언이 끝나기 무섭게 검사측은 새로운 증거를 제출했다.
“이것은 원고가 피고에 의해 상처받고 상담실에 도움을 요청했던 기록입니다. 증거로 제출할 것을 승인해 주십시오.”
증거가 제출되고, 증거물을 살펴본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의 판사는 조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담 신청서는 완벽하고 객관적인 증거물이었다. 이 종이들만 있다면 앞의 증언들은 거의 필요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변호측도 그리 만만하게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판사님, 저희에게도 객관성을 위해 그 증거의 검토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변호학생은 당당하게 나와 절차에 맞도록 서기에게서 증거를 받아갔고, 이내 변호 측의 반박은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상담일자가 사건 발생일자와 지나치게 ‘떨어져’있었던 것 이었다.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으로서는 너무 길었다는 점과, 검사 측의 증인들은 사건이 발생했던 시간 운동장에 나가 있었음이 확인되면서 검사측이 무리하게 준비한 증거들은 단 박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이 법정은 피고와 원고의 공동책임으로 판결이 났고, 학생자치법정은 다시 어색하면서도 화목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도 경악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실질적인 학생자치법정이었다고는 하지만, 검사 측이 저지른 것은 명백한 위증이었다는 것 이다.
사실 검사 측이 저지른 실수는 아주 경미한 것 이었다. 만일 그들의 몸과 마음이 조금 더 성숙해 있었다면 겉으로 보이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 이다.
비리는 단연 어른들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전유물이 아니다. 순수한 순백의 와이셔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사이에서도 이러한 인맥의 힘은 작용을 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편을 가지고 있는 쪽이 승리를 거머쥔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의 학교에서도 이러한 불합리 적인 원리는 현실로서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어른들은 사회의 비리에 통탄하고 원망하며, 점차 그를 불신으로 바꾸어 가지만 알고 있을까? 모든 것의 시작은 언제나 경미한 법이다.
아이들은 이 나라를 짊어질 주역이고, 언젠가는 또 다른 나라의 새싹을 키우게 될 것 이다.
협상이라는 고운 이름 아래 청탁을 하고, 현실이라는 변명 아래 검은 돈을 깔 것 이다.
내가 생각해 보기에, 학교라는 곳은 어른들의 사회를 작게 응축해 놓은 곳 이다. 연줄만 있다면, 사람 하나를 바보로 만드는 것 따위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이러한 연(緣)주의의 사회는 부모들로 하여금 더 좋은 학벌에 인연을 맺고자 하는 욕심을 확산시켰고, 이러한 현상은 끝끝내 사회를 곪아 병들게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보고서도 어릴 때부터 약아야지만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알고 있는가? 그렇게 해서 사회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사회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을......
인연(人緣)이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스치고 만나고,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이해함으로서 인연은 그 역할을 다 한 것이다. 인간의 권리가 아닌, 인간의 마음인 것 이다.
인연이 이용의 수단이 아니라, 그저 사람과 사람이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세상 한 가운데에서 있는 감정의 나눔이 될 때 비로소 이 사회는 숨통을 틔고 새 숨을 내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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