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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호 2016년 8월 26일자
털어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속담이 있다. 누구나 다 흠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사흘 굶어 옆집 담 안 넘어가는 사람 없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고 쉽게 수용해도 되는 말인가에는 그렇지 않다고 보여 진다.
모든 사람이 다 털어 먼지가 난다해도 우리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필자는 인지상정 이것이 올은 진리가 아니라고 본다. 모두가 다 그러하니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행동한다면 결코 우리에겐 반성이나 잘못을 시인하거나 개선해야 한다는 여지가 없기 때문에서다.
배고프다고 다 남의 집 담을 넘는 것이 당연하다면 어찌 그것을 옳다고 용납할 수 있겠는가 마는, 세상에는 정도가 있기에, 혹여 정도를 가다가도 곁길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정도로 가다가 힘들면 외도의 길을 걸어도 된다는 말은 옳지 않지만 때론 할 수 없는 선택으로 믿어도 주지만.....
선이 있다고 하자. 직선인가, 곡선인가를 알려면 그 옆에 직선을 병행해 비교해 보면 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곡선이면서 직선 행세를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진실이 거짓과 위선에 묻혀 버린 감이 들 때도 많다. 분명 아닌데 그것이 옳다고도 한다. 또 그것이 옳은 것으로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변하더라도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진리의 해법이라고 본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 외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우리네 삶은 참으로 고독하고 외롭다. 그러나 바르게 산다는 것은 매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무게를 짊어지고 우리는 그 길을 열심히 가고 있다. 또, 그렇게 사는 것이 부모님으로부터 교육으로 받은 삶의 현주소였기에, 서투른 사람이 곡선을 직선처럼 살아도 우리는 바른 길을 가면서 신앙을 지키며 그렇게 살았던 부모님들 길을 걷고 있지만 어려운 인생길은 오늘도 오르막길에 있으니 소망이 없는 허탈감에 젖어 든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윤리 도덕은 이미 무너졌고, 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있는 사회가 되어 가고, 세상을 마음대로 뒤흔들고 쓰는 것이 법이고 위도 아래도 없고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우리에게 무거운 짐으로 져주고 있으니 꿈이 없는 시대를 사는 것 같다.
밤에 꾸는 게 꿈이 아니고 생각에서 일어나는 게 곧 꿈이다
꿈이나 현실이 다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평생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생각해 보라. 그 파란만장한 일들은 다 꿈속 같다. 또한 우리가 어떤 기가 막힌 일들을 접했을 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가는 때가 있다. 꿈속에서 어떤 슬픈 일이 일어났을 때 현실처럼 가슴 아파하는 고통의 아픔은 실제이다. 꿈속에서 꿈이라 말할 수 있고 느끼는 자 드물다.
장자의 일화를 들어보자. 어느 날 장자가 나비가 되어 이 꽃, 저 꽃 희롱하는 꿈을 꾸다 깨달은 바 있었는데 나비가 장자 곧 자신임을 알았다. 그렇다면 장자가 꿈에 나비로 변한 것인가, 현재 나비가 꿈속에 장자로 변한 것인가? 장자가 곧 나비일 수 있고 나비가 곧 장자일수도 있다.
그래서 성현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한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짧은 시간의 일들을 꿈이라 한다면 무한한 생과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볼 때에 현실이라 믿는 것도 눈 깜짝할 시간이다.
꿈은 우리의 집착한 생각과 함께한다. 밤에 꾸는 꿈만이 꿈이 아니라 우리의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이 곧 꿈이다. 한 생각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 그것이 모두 꿈인 것이다.
이런 데 여름 날 시원한 냉수 같은 것이 없을까 ~~ “있다”
세상은 지나가는 것이고 내가 왔다 가는 세월은 극히 짧지 않은가. 인생 칠십 또는 백세를 산다고 해도 내가 머물렀다가 가는 시간은 여름날 오침과 같은 것이다.
풀에 이슬 같은 것이라 했으니 오늘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오늘 내가 만난 사람이 제일 중요한 사람인 줄 알아 옳고 곧게 살면서 확실한 목표 달성을 위해 오늘만이라도 정도를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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