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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9호 2016년 5월 27일자
지금 탄광촌 현장은 엄동설한과 같은데 (상편)
대한민국이 석탄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문헌에는 선조 23년(서기1590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두 해 전 평양관찰사 윤두수가 기록한 평양지에 “성동(城東쪽)” 10리 지역 문수봉에 석탄소가 있으며, 동북쪽 30리 지역 고방산 등지에 석탄이 있는데 불을 붙어도 연기가 나지 않는 무연탄이 묻혀있고, 미륵동에는 흑토가 있기에 황토를 섞어 물로 반죽하여 불을 때면 한 끼의 음식을 지을 수 있는 흙이 잇다는 기록이 우리나라가 석탄을 사용한 시기로 보면 된다.
우리 삼척군 광산개발은 조선 말기였다, 왕실의 궁내부 내장원이 관장업무를 보았으며 이 때, 소유 51개 광산 중 12개만 석탄 생산지로 기록되어 있는데, 첫 째 탄광이 우리 삼척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석탄개발이 국가적이나 민족적으로 필요하여 개발하게 된 것이 아니고 외세의 이권이 있었으며 허약해진 왕실이 외국인들에게 채굴권을 허가하고 일정액의 특허료를 징수하여 왕실재정으로 충당하면서, 러시아가 함경북도 경성지역에서 자원을 생산하여 수탈하는 첫 삽을 시작으로 시원이 되었다.
일본은 한일합방 후부터 대한민국 석탄자원을 생산으로 시작하여 중일전쟁 발발한 1935년에는 1백95만 톤을 수탈하면서부터, 1941년 태평양전쟁 때는 무려 6백만 톤을 일본국으로 실어갈 만큼 초고속 생산을 마구잡이 식 채굴로 지하를 흠집 낼 때, 일본 해군성 소속의 지질기사 시라키타쿠지를 파견하여 도계와 장성에 개발을 착수시켰다.
특히 도계탄광에서 출토되는 괴탄은 별도의 조제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철도기관차 연료를 사용했기에 일본인들은 도계석탄을 선호했기에 무자비한 생산을 감행하였다.
우리나라 석탄은 국내 유일의 자립에너지이기에 석탄산업은 외국에 비해 부존상태가 불량한 한계를 안고 출발하였다. 석탄이 매장되어 잇는 지층을 우리는 탄층이라고 부르는데 두께가 수십 cm에서 수 m의 것이 10 ~ 20매 정도 겹쳐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 중 탄층의 두께가 30cm 이상 되는 것에는 경제성이 많아 채굴의 대상으로 가치를 두게 된다. 반면 우리 탄층은 지각변동이 심해 대부분 45도 ~ 90도 경사를 이루면서 보통 산맥 속에 매장되어 있기에 어느새 해발고도 아래, 해저까지 내려가 생산하게 한다.
일제서부터 현재까지 도계광업소 석탄생산 연륜은 80년이 되었기에 해저 300M 이상 내려가 석탄을 캐내고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우리 도계지역 탄광 2곳은 심부화가 되어 있기에 채탄비가 증가되고, 안전사고 위험도가 증대 될뿐더러, 작업조건이 열악해 능률을 올릴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석탄공사 빚이 1조 6천 억 원을 질 수밖에 없는데 현 정부는 이런 고충을 잘 알고 있으면서 사채 빚이 많아 폐광을 서두르게 되었다고 보도한 것 같다.
선진국의 경우 매장량 대부분이 유연탄이고 미국이나 호주의 탄전지대는 탄층이 평탄한 상태로 지표면에 드러나 있기에 흙을 살짝 걷어내면 기계로 퍼내는 노천채굴 작업이기에 산업의 빵이라고 불러 주는 동시, 발전소, 제철소 등 산업용으로 이용되어 경제를 부흥시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석탄산업 메카지대인 도계는 교통이 불편하고 사람 접근이 힘든 태백산맥 한 가운데 있기에 광부들이 제아무리 죽을 만큼 힘을 다 써도 노천채굴 생산단가를 따라 잡을 수가 없다.
도계광업소는 파독광부를 배출시킨 국가 건설의 주역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미국으로부터 무상원조 석탄을 기대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이것은 모든 조건이 우리 힘으로 극복할 수 없었기에 이승만 정권은 정부 수립 직 후부터 석탄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실업자가 넘쳐나던 시대에 석탄광업 탄광현장은 물론 이에 연관된 산업체 분야에 막대한 고용을 창출해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 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 자립을 실현함으로써 수입 대체효과에 따른 외화절약은 물론 전력증대, 철도, 도로건설에 균형발전을 꾀하였지만, 무엇보다 결정적 공로는 무연탄으로 연탄을 만들어 각 가정에 땔감으로 보급함으로써 산림녹화에 큰 공을 세워놓아 세계 유일의 국가로 지목받아 왔다.
이런 과정에서 얻어 낸 칭호는 산업전사 하나뿐이다. 무너진 탄 더미에 깔려 생목숨을 잃었고, 때론 가스폭발로 고혼이 된 아버지도 계시었고, 불의사고로 영원한 불구자가 된 광부곁에는 불구의 직업병인 진폐증을 훈장으로 받은 산업전사들이 도계탄광촌을 제 2의 고향땅으로 섬기며 공동화 된 광산지역을 사수해가면서 내 자식이 아버지 뒤를 이어가는 아들 광부의 발길까지 돌봐주면서 안녕을 기원하고 있는데 정부는 석탄공사가 빚이 많아 폐업을 준비시키겠다는 보도 자료를 내 놓고 조용한 지역을 마구 흔드는 정책이 과연 옳은 것인가!
젊은 청춘을 불태우며 석탄생산에 이바지한 광부들은 경제개발 5개년으로 지금의 한민국을 일으켜 세우면서 파독광부를 배출시키면서 71년도 오일쇼크를 막아내면서 대한민국 경제건설의 주역탄광임을 알아야 하는데, 1조6천 억 원의 빚을 운운하면서 내일도 지하막장에 들어가 석탄을 캐야하는 광부의 마음에 까만 멍에를 안기면서, 노병광부 내 아버지의 고군분투마저 하얀 연탄재 취급을 해야 하는 정부가 정말 죽일 만큼 분노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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