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75호 2016년 4월 1일자
마른 나무에 새움이 트고 꽃 피고 열매 맺는 자연의 신비는 환상이 아니다. 봄 동산에 나비의 춤은 굼벵이의 신화도 아닌 것은 자연이 빚어 만든 부활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온 세상에 부활의 열기가 일고 산야에는 봄의 향연이 피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어서다.
자연은 부활의 찬양을 높이 부르는데 우리의 실존은 그대로 깊은 심연에서 탄식한다고 한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죽어야 할 숙명의 멍에 아래 놓여 있는 불행한 존재라고도 말을 하지만, 죄로 인해 에덴에서 추방당한 인류의 삶은 묘지로 향해 가는 괴롭고 긴 행렬이다.
이 죽음의 행렬은 영원자로부터 떨어진 죄가 비참할 수밖에 없기에 결국 주검을 맞아 불안과 괴로움이 없는 묘지가 안식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한 근심, 질병으로 인한 괴로움, 거짓과 미움과 다툼에서 겪는 아픔, 늙고 죽는 슬픔들이 우리가 맞는 운명이다. 여기서 파생된 전쟁, 핵무기 등 위협, 사상적 분열과 국제 정세 불안,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파탄, 도덕적 문란과 종교적 타락 등 우리 가슴을 누르고 있는 현실중압감은 치명적이고 위기적이며 종말적이 아닌가 싶다.
이런 가운데 부활의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지난 27일은 부활절이다. 절망과 죽음의 무덤 속에서 부활은 생명력의 필연적 현현으로 역사 속에 산 사실로 계시되었다.
이 부활의 사실은 인간의 주관적 염원이나 절망과 관계없이 역사 속에 나타난 객관적 계시였다. 이 역사적 계시는 인간의 이성이야 긍정하든 안하든 엄연히 역사와 세계를 향해 외치는 진리로서 사망이 생명을 결단코 음부에 가두지 못한다는 승리의 복음이라고 한다.
너무 벅찬 사실이기에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하는 옅은 인간의 이성,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있을 수 없는 사실이라고 부정하는 천박한 상식이라고도 어느 신부님은 말씀하시면서 기도하였다. 그런데 썩은 밀알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마른 나무에서 새순이 자라며 유충에서 성충으로 비약하고 계란에서 병아리가 부화한다. 생명의 법칙을 부인하는 자들은 무엇을 믿기에 믿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기에 그냥 어리석은 자라고만 할 수밖에 없다.
생명의 승리를 천명하여 새로운 가치 질서를 선포하고
필자도 신앙인으로써 목사님으로부터 많은 설교를 들어왔다. 부활 신앙은 사랑하는 이를 무덤에 묻고 쓸쓸히 돌아오는 길에서 깨달을 수 있는 진리라고 들었다.
부활의 진리는 관념이나 교리, 소망이 아닌 현재적 신앙이기에 죄에 매인 육체가 고통의 멍에 아래 신음하다 죽는 것은 숙명으로 본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를 죽지 않는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는 그날을 사모하며 기다리게 하는 예수님의 보증으로 믿는다.
뿐만 아니라 부활 신앙은 상실된 인격을 회복시키고 인간의 정신을 소생시킨다. 썩은 양심의 재생, 무너진 윤리 생활을 부활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 썩어 냄새 나는 부패 속에서 새 혁신의 싹을 나게 해 새 역사를 창조시키는 부활이다.
불의가 공의를 못 박아 죽이려는 시대, 전쟁이 평화를, 공포가 희망을, 억압이 자유를, 혼란이 질서를, 분열이 통일을, 미움이 사랑을, 거짓이 참을 죽여 무덤에 봉하려는 흑망의 권세를 향해 그리스도는 오늘도 살아계셔서 진리와 정의, 생명의 승리를 천명하여 새로운 가치 질서를 선포하고 있다. 독재의 권력 구조 밑에서 매장된 인권과 민주주의를 부활시켜 죽음의 전쟁터에서 평화의 꽃이 피고 인권의 공동묘지에 자유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그날 까지 우리는 두 손 모아 기도할 뿐이다.
죄와 사망이 의(義)와 생명을 결단코 무덤에 봉하지 못한다는 부활 신앙을 통해 영원히 사는 그날을 위해 그리스도의 부활과 부활의 복음을 기다리는 2016년 부활이 되길 기도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