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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2호 2016년 2월 19일자
삼척 ‘기줄다리기’는 지난해 12월 2일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돼 인류무형유산’이 됐다. 정월대보름제의 꽃은 바로 기줄다리기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척부사로 부임한 ‘미수 허목선생’은 1662년 정라진 항구 일대 바다 해일을 예방하기 위해 육향산에 ‘척주동해비’를 세우고 정월 대보름날 기줄다리기 행사를 처음 도입했다고 전한다.
기줄다리기는 여름장마철 시내를 감아도는 오십천 하류에 범람이 잦아 주민 피해를 막고자 제방을 쌓을때 여러 사람들이 함께 줄을 당길수 있도록 새끼줄을 만들어 많은 주민들이 작업(일명 ‘울력’, 울력이란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하는 일을 말한다. 즉 단합의 형태)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한다. 효율적인 작업의 도구로 보인다.
또 미수 허목 선생(호는 미수(眉?), 이름은 목, 1595∼1682: 선조 28년∼숙종 8년)은 1600년 삼척부사에 부임한 후 기줄다리기 도입 1년전 정라진 육향산에 잦은 해일과 풍랑을 막기 위해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를 세워 고을 백성을 위안시켰다. 우리 옛 선비들의 백성을 위한 도량정치와 헌신정신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미수 허목 선생은 조선 초중기 서인과의 예송논쟁에서 패하여 삼척부사로 좌천됐다. 당시 삼척에는 바다 해일과 집중호우로 오십천이 범람하여 백성들은 인명과 재산을 잃었다고 한다. 선생은 평소 선비 문장가로서 전서에 탁월했다. ‘척주동해비’를 세운 이후 자연재해가 줄어들었다고 전한다. 현세에 허목선생과 같은 선비는 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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