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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1호 2016년 1월 29일자
새해가 밝았건만, 마음은 온통 어둡다. 새해가 전혀 새해 같지 않다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희망과 기대 속에 한 해를 시작해야 마땅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오히려 더 찌푸려져 있다. 암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다. 한 해가 지나면 뭔가 나아져야 할 터인데, 도리어 뒷걸음질할 조짐마저 보이니 어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것 또한 지나가리오, 라며 덤덤하게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지역 사회는 큰 위험에 부딪쳐 어디가 앞이고 뒤 자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정부가 빚을 내, 집을 사라고 재촉하는 듯한 정책을 남발해 서민들을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가계 부채는 1,200조원대로 늘어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돼 있다. 돈을 빌려 집을 사 놓으니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고 소비 부진으로 이어져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때 부러움을 샀던 포항, 구미, 울산, 거제 등 공업도시들의 동반 추락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과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어릴 때 귀가 닳도록 들었던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진 나라가 이 정도로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압축 성장 뒤의 압축 퇴보인가.
경제가 그렇게 어렵다면 정치권이라도 제대로 돌아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 땅을 칠 노릇이다. 여야 모두 민생은 내팽개친 채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에 목숨을 걸고 있으니 나라가 제대로 될 리 없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직 자신의 지역구, 소속 정당, 정파, 구닥다리 신념에 매몰돼 싸움질만 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정치권이라 실망스럽고 게다가 무책임과 부도덕성의 전형들이 여의도를 차지하고 있으니 서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본다.
청년 실업, 비정규직, 노령화 저출산, 사교육비, 역사 논쟁 등 해묵은 현안도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될 기미가 없다. 탐욕과 이기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에 양보와 타협의 미덕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올 한 해 절망 속에 살아야 할까.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희망뿐인데 ~
희망만 있으면 행복의 싹은 그곳에서 움튼다고 하지 않던가. 희망을 키우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현재의 정치권을 강력하게 응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선진국들에서는 정치의 중심이 국회 또는 의회에 있다. 그래서 의회민주주의라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우리가 과연 의회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의회민주주의는 정당정치를 바탕에 깔고야 가능한데 우리나라가 과연 정당정치를 하고 있는 나라인가 의심스럽고, 국회의사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야당은 툭하면 장외투쟁을 한답시고 서울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거기서 정부나 여당을 비난도 하고 공격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등 우여곡절을 만들고 있으며, 그 야당 의원들을 달래서 국회로 돌아오게 하는 일도 결코 수월치는 않겠지만 여당다운 행동이나 대안 없이 장외로 나가도록 부추기는 여당도 꼴사납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국회무용론도 제기되고, 국회의원 수를 100명으로 줄이자는 운동도 국민 사이에 활발하다. 그러나 국회는 매우 냉담하다. 자기들 밥그릇에 관한 일이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터이지만 가부 간의 의견도 내놓지 않고 잠잠하기만 하다 국회의원 100명 제안도 법안으로 발의되어 국회가 심의하고 통과시켜 줘야 비로소 그런 개혁이 가능한데,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국민의 그런 의견도 묵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정치는 국민이 기대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고, 그것을 바로잡을 가능성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국회선진화 법 이것이 요물인데 누가 만든 작품인가
잘했으면 지금쯤 일본과 맞먹는 경제력을 갖출 수도 있었는데 대한민국은 발목이 잡힌 채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책임이 전적으로 국회에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과연 편견일까? 흔히들 그것이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건 어느 당의 어떤 의원들이 만들어서 통과시킨 것인지 따져보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그들이 나서서 국민 앞에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할 일이 아닌가. 다수결이 민주주의 기본인데 만일 그 원칙이 무시된다면 민주주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경제를 바로잡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정치권을 응징하는 데는 표심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몽룡이 변 사또를 응징하듯, 곤장을 치고 쫓아내면 가장 바람직할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이고, 국민들이 정치권을 갈아엎는다는 각오만 있어도 충분할 것이다. 4.13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힘만 제대로 보여주면 우리 사회의 수준과 서민들의 삶은 한층 나아질 것이고, 제대로 된 사회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이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듯이 필자 역시 내가 태어나고 학교를 다닌 곳이 삼척이기에 삼척의 희망을 기다리고 있다.
지역뉴스에는 삼척이 가야 할 곳이 산 넘어 산이라고 보도하면서 방향 자체를 잃었다고 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닌 핵 반대 투쟁에서 온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삼척시는 핵 발전 문제로 지역 경제가 얼어붙어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등 따시고 배부르면 만사형통이라고 여겨왔는데 우리네 살림살이가 괜찮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한국 경제는 혼을 잃은 호랑이라고 부른다면 작은 소도시 삼척은 혼을 잃은 게 아니고 정신 그 자체 없이 바람 앞에 촛불처럼 타고 있는 상태라고 보고 싶다. 삼척시민들은 사후 대책이 뭔지를 시민들이 내 놓든지 아니면 요구해서 지역 경제를 살리고 핵 투쟁에서 승리하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투쟁장소에서 하나 된 응집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 보다는 물밑 접속과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 법의 압력에서 그리고 정부의 단호함을 풀어내는 게 희망의 삼척을 만드는 길이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