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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8호 2015년 12월 18일자
우리가 살고 있는 강원도 태백산 산자락에는 곱게 물든 단풍들이 색동옷으로 갈아입고 8부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시월에, 강원랜드 복지재단에서 마련해준 일본 오사카 규슈 휴양 프로그램으로 전직 광부 28명은 아직도 못다 부른 망향가를 듣기위해 2015년 10월 9일 오후 2시 구마모토현 만다갱 유적지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우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강원랜드 복지재단 인솔자로부터 선생님의 삶을 잠시 들었기에 어떤 분인가 하고 기대를 가졌는데, 역시나 다를까, 곱게 늙어 가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조국의 가을 하늘처럼 티 없이 맑고 미소지어주는 모습에 1930년 대 이용악 시인이 쓴 시 한 구절을 마음속에 내려놓았다.
달빛 밟고 머나먼 길 오시리, 두 손 합쳐 세 번 절하면 돌아오시리, 어머닌 우시어 밤새우시어 새하얀 박꽃 속에 이슬이 두어 방울 맺혀 있다고 노래한 “달 있는 제사처럼”, 우 선생님도 우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탄광 역사박물관 한 켠에서 딸과 함께 만다갱에서 희생된 조선인 광부들의 영혼을 깨웠고, 우리에게 미이케탄광 잔재 유물 앞에 4천 여 조선인들이 강제로 끌려와 생과 사를 넘나들었던 역사의 현장을 설명해 주었다.
한 시간 이상 돌아보고 선생님은 우리들이 타고 온 버스에 탑승하시어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하나하나 또렷하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오무타시 야마기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우 선생은 1995년 건립한 징용희생자 위령비에서 일제강점기 만행을 들려주면서 선생님도 울었고 우리도 울게 한 그 시간들은 역사의 교훈으로 남아 훗날 대한민국 발전에 초석이 되고 잊을 수 없는 과거사였다고 후손들에게 남겨줄 것이다.
존경하는 우판근 선생님!
미이케탄광, 미쓰이염료공업소, 미쓰이전기화학공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광복도 맞지 못하고 중도에 숨을 거두신 조선인 징용자를 추모하고 있는 고귀한 비문에는, 사랑하는 부모처자, 형제자매와 어쩔 수 없이 이별하고 이 먼 이국땅에서 온갖 고난을 겪으신 영령들이시여! 몽매에도 그리던 고국산천을 멀리하고 여기 잠드신 대한인 고혼의 한, 언제나 가시리이까, 제 2차 세계대전시 이 땅에 강제로 징용되어 과혹한 노동에 시달리시다가 불구의 객이 되신 지 어언 오십 여 성상, 세월은 흘렀어도 사무친 한이야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일본 땅에서 운명을 같이 하여 온 동포들이여, 여기에 있어 고인들의 넋에게 위로의 정을 담아 이 비를 세우노니 이로써 지난날의 불행이 다시는 없기를... 애처로운 영령들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이 비문을 읽으면서 저는 눈물을 흘렸다.
이 추모비를 세우기 위해 1990년부터 설립에 뛰어드셨고 5년 간 세 개 회사와 오무타시를 250여 차례 방문하면서 일본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하였으며 단 한 차례 약속시간도 어기지 않으시고 약속시간 5분 전 그들 앞에 나타나시어 나의 뜻을 전달하셨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때, 저는 또 한 차례 선생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존경심에 사과나무를 심었으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확인하게 하였다.
애써 건립한 추모비를 훼손시켰다는 뉴스를 접하고
지금은 비록 일본에 거주하는 학생과 오무타시 시장과 시의회 의원 그리고 총영사관 직원들이 찾아와 제를 올리고 있으나 위령비 기단 높이 46cm만큼 한국에 계시는 46명의 희생자 가족들이 찾아와 함께 추모했으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작은 소망은 꼭 이루어질 것으로 믿으며, 내년에는 분명히 “니네 어디 갔노”, “나는 이래 혼자 살고 있는데”, “나도 따라갔으면 좋았을 걸”, “나는 어찌하면 되냐며” 혼자 울었다는 노인의 망중한에 붙이어 술잔을 바치는 그 날에는 처연하지 않은 곡(哭) 보다 통곡의 울음들이 대성통곡으로 변해 야마기 공원에 잠이든 영령들을 깨워줄 것이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우다가 1944년 차디찬 감옥에서 순직한 이육사의 외침 광야에서 밝혔듯이,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는 외침과 같이, 선생님이 계셨기에 일본 징용에서 젊은 청춘을 만다갱에 묻은 46인의 추모비는 선생님이 보여준 만큼 이 산하에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지리라 본다.
우리에게는 어떤 각오의 메시지를 일본에 경고로 보낼지는 모르겠으나 대만은 이런 글을 국민에게 전파하였다. “일본을 용서하지만 잊지는 않겠다. 그리고 싱가포르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고맙다. 바로 우리를 해방시켜 주어서...”라는 안도의 숨소리를 간직하고 있는데 10월 말 누군가가 추모비에 낙서하고 훼손시켰다는 뉴스를 접할 때 선생님의 가슴앓이보다 우리조국을 음해하는 행위라고 느끼면서 제가 치를 떨었습니다.
그러나,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망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상적인 평화의 기도문을 가슴에 새기며 분노를 참고 있지만 일본인의 만행을 반성하고 사죄했으면 하는 바램을 두며 이 편지를 접는다.
“하늘은 절대로 일본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두면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