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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폐광의 어둠 속에서 희망의 별을 띄우다
김태수 탄광지역활성화센터 학술연구소장  |  sd7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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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6.10.12  14: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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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수 탄광지역활성화센터 학술연구소장

도계를 살리는 힘,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는 작은 실천

폐광촌이라는 말에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배어 있다. 한때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이었던 탄광촌이 이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일자리 부족, 지역경제 침체라는 현실 앞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도 예외가 아니다. 수많은 광부가 땅속 깊은 막장에서 석탄을 캐고, 그 석탄으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뒷받침했던 도계는 이제 석탄산업의 쇠퇴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나 한 지역의 산업이 쇠퇴한다고 해서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삶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바탕으로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갈 것인지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다.

최근 도계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 하나가 눈길을 끈다. 도계의 산업유산과 자연환경을 활용해 새로운 여행프로그램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다. 지난 9월 14일 나와 함께 도계지역 산업유산을 현장을 걸어서 답사했던 정지희 양손잡이연구소 대표를 비롯한 젊은 문화기획자들이 만든 상품이다. 이름하여 ‘걸어서 도계 속으로’. 여행객들이 광부들의 삶이 깃든 사택과 갱구,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도유산, 주민들의 생업과 애환이 서린 시장을 걸으며 도계의 역사를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지역음식인 물닭갈비를 함께 나누고, 주민들이 직접 만든 연극 《마지막 광부》를 관람한 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시간까지 더했다. 겉으로 보면 소박한 여행상품 하나를 기획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대규모 관광시설을 건설하는 것도 아니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외부 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다는 거창한 사업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작은 시도 속에서 도계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중요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지역의 희망은 언제나 거대한 개발사업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곳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마음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도계에는 이미 많은 자원이 존재한다. 광부들이 살았던 사택과 탄광의 갱구, 석탄을 운반하던 철도시설, 탄광촌의 생활문화와 주민들의 기억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산과 계곡, 맑은 밤하늘도 도계가 지닌 소중한 자산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자원들을 산업이 끝난 뒤 남겨진 흔적이나 개발을 기다리는 대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그것들은 다른 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도계만의 역사적·문화적 자산이 된다.

광부들의 사택은 단순한 낡은 건물이 아니다. 한집에 모여 살며 생계를 꾸리고 자녀를 키웠던 가족의 역사이며,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간 생활사의 현장이다. 갱구와 철도는 석탄을 생산하고 운반했던 산업시설인 동시에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물질적 토대다. 시장과 골목에는 광부와 가족들의 소비생활, 이웃 간의 관계, 기쁨과 슬픔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 유산들을 연결해 걷는 일은 과거의 건물을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지역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여기에 주민들이 직접 만든 연극 《마지막 광부》가 더해진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지역주민이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기억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단순한 공연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탄광의 역사를 외부 전문가의 설명으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역의 역사가 주민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관객의 공감을 얻으며, 다음 세대의 기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역문화가 외부에서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참여와 창작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다.

물닭갈비를 함께 먹는 시간 역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여행객이 지역의 식당을 이용하고 주민과 음식을 나누는 일은 지역경제에 작게나마 보탬이 된다. 별을 바라보는 마지막 일정은 도계가 탄광의 역사만으로 설명되는 곳이 아니라 자연환경과 문화적 체험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산업유산 탐방과 지역음식, 주민 연극, 별 관측을 하나의 여정으로 엮은 것은 도계의 과거와 현재,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려는 시도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 하나가 도계의 어려운 현실을 단숨에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관광객 몇 명이 찾아온다고 인구가 늘어나거나 일자리가 대규모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산업전환을 위한 국가와 지방정부의 정책, 지속 가능한 일자리, 주민의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지역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제도와 예산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작은 시도의 가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큰 정책과 사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스스로 시작한 일을 하찮게 여긴다면, 지역의 변화는 언제까지나 외부의 지원과 대규모 개발만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지역의 미래를 만드는 데에는 공공정책과 재정투자가 필요하지만, 그 정책과 투자가 생명력을 얻으려면 지역 안에서 먼저 가치를 발견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시도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도계의 산업유산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보존하면서, 주민 해설과 생활문화 체험을 결합한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도계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도계석탄산업유산보존회」(이사장 오한동) 또한 바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지역의 식당과 상점, 문화예술인, 청년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여행객의 방문이 지역 소비와 주민의 소득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광부와 가족들의 구술기록을 수집하고, 사택과 철도유산을 연결하는 탐방로를 정비하며, 주민이 직접 지역의 역사를 안내하는 해설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러한 시도가 축적된다면 도계는 단순히 석탄을 캐던 도시를 넘어 산업유산과 생활문화,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특별한 여행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작은 움직임이 도계에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에 주목한다. 우리는 폐광 이후의 도계를 무엇으로 기억하고, 무엇으로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것인가. 석탄산업이 끝났다는 사실만을 되풀이하며 상실을 이야기할 것인가, 아니면 석탄산업이 남긴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새로운 가치로 전환할 것인가.

폐광은 산업의 종말일 수 있지만, 지역의 종말이어서는 안 된다. 탄광의 문이 닫힌다고 해서 광부들의 삶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며, 석탄 생산이 멈춘다고 해서 도계가 지닌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석탄이 남긴 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지, 그 유산을 바탕으로 어떤 지역사회를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이번 ‘걸어서 도계 속으로’는 그 출발을 알리는 작은 신호다. 누군가는 사택과 갱구를 걸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삶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연극을 보며 탄광촌 사람들의 애환에 공감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처음 알게 된 도계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한 경험이 쌓이면 도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 있다. 폐광으로 쇠퇴하는 도시라는 이미지 너머에, 지켜야 할 역사와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는 도시라는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지역을 살리는 일은 결국 그 지역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늘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역의 자원을 지키는 사람, 그 가치를 알리는 사람, 그곳을 찾아와 경험하는 사람이 늘어날 때 지역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지역사회는 참여와 협력으로 응답하고, 지방정부는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제공해야 하며, 중앙정부는 산업전환 과정에서 지역이 감당해온 희생과 부담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오는 10월 25일, 도계의 골목과 탄광유산을 걷고, 주민들과 음식을 나누고, 《마지막 광부》를 관람한 뒤 별빛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날의 여행이 당장 도계의 미래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도계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고향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되며, 또 누군가에게는 지역의 역사와 유산을 보존하는 일에 동참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땅속에서 석탄을 캐던 사람들이 한 시대의 빛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 역사를 기억하고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도계의 새로운 빛을 만들어야 한다.

하늘에는 별이 있고, 땅에는 블랙다이아몬드의 역사가 있다. 그 사이에는 여전히 도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작은 실천이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참여를 만나고, 지역사회의 협력과 공공의 지원으로 이어질 때 도계의 내일은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

희망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곳에서 누군가 먼저 작은 불을 밝힐 때 시작된다.

지금 도계에서 시작된 이 소박한 움직임이 바로 그런 불씨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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