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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미국 학자 가렛 하딘에 의해 만들어진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란 말이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개인들이 각자 자기이익을 과도하게 추구하게 되면, 결국 전체의 이익이 파괴되게 되어 공멸을 자초한다’는 지극히 교훈적 의미의 말이라 하겠습니다.언젠가 우리 고장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에 추진 중인 LNG생산기지 현장을 둘러보고 인근 호산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우연히 대형공사의 일환으로 바다를 매립함에 따라 바다 양식업자들의 보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양식업 어민들의 합리적인 이익보장을 위해 앞장서서 자신의 업을 희생하면서 까지 열심히 일하던 김 모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들은 얘기를 한마디로 정리해 보면, 양식업 어민 보상과 관련하여 울진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한 한국수력원자력 및 평택.여수 등에 LNG생산기지를 건설한 한국가스공사가 기왕에 위 울진 등 지역에서 추진한 보상절차와 내용이 우리 삼척에서 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위 울진 등은 모두 주민과 주민대표가 일체의 보상문제에 대해 직접 협상함으로써 우리 삼척어민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받은 반면, 삼척은 무슨 연유인지 관청(‘한국가스공사와 시장 간에 체결한 협약내용’을 보면 그 진실이 가려지겠지만..)이 개입하여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고, 우리 어민들만 더 어렵게(보상을 덜 받게) 한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일사분란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명분으로 주민과 대형 국책사업자 간 협상을 방해하고, 사업자들만 도와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상당수 시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 삼척에는 대형사업이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추진되고 있습니다. 자기만 살자고, 자기만 대형사업체로부터 더 많은 보상을, 더 큰 이익을 보자고 행동하다 보면 결국 다 잃거나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보상과 이익이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 위 ‘공유지의 비극’ 이론이 보여주고 있습니다.자, 어떻게 하겠습니까? 좀 따져 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그러나 이것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혹여 아직도 다른 사람들은 얼마의 보상을 받든 간에 어떻게 해서라도 나만 많이 받으면 그만이라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민과 보상대상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협력 합심해서 깨끗한 대표를 뽑아 슈퍼 갑(甲)인 대형사업자와 협상한다면, 이 ‘공유지의 비극’을 살짝 비껴 나가는 동시에, 개인과 전체주민의 이익을 크게 하면서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주민으로 영원히 아름답게 살아 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사족>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기 어려울 때, 다시 말해서 개인 간에 합의가 되지 않을 때 심판(referee 또는 umpire)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심판이 제대로 된 심판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심판의 역할을 온전히 하지 못하였습니다. 심판이 제대로 하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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