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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탁 논설위원 |
지난 6월 29일이 정부에서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제1회 “광부의 날”이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런 날이 기념될까” 란 생각쯤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계 사북에서는 이날을 주민들과 함께 축하하는 기념식을 열었지만, 태백시는 전야제를 비롯해 본 행사를 1,300여명이 모여 성대하게 치루었다.
“광부의 날”은 지난해 제정되어 올해부터 처음 시행되는 법정기념일이지만 조국 경제 부흥을 위해 단 하나뿐인 목숨을 지하 갱속에 바쳤다는 수고에 정부는 광업인의 날로 정했다가 태백 성역화 사업회와 우리지역 이철규 국회의원(산자위 위원장)의 끈질긴 항의와 설득으로 120년 탄광 역사를 기념일로 지정했다.
지난해 12월 30일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석탄산업전환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탄광 폐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환기하지만 다소 부정적인 어감을 지녔던 "폐광지역"이라는 명칭을 좀 더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석탄산업의 공정한 전환을 지향하는 “석탄산업전환지역”으로 변경한 것이다. 개정 특별법은 이와 함께 6월 29일을 “광부의 날”로 지정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념행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6월 29일은 대한민국 최초의 광업법이 제정 공포되어 국내 광업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날이다.
석탄산업전환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11조의6 (광부의 날) ① 석탄산업에 종사하였거나 종사하는 과정에서 안전사고나 직업병 등으로 목숨을 잃은 광부의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6월 29일을 광부의 날로 정한다. 법률상 광부의 날 제정 취지는 광부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수많은 광부들이 광업에 종사했던 시기, 그들의 일터는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공간이었다. 갱도의 입구에는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는 섬뜩한 문구가 무심히 붙어 있었고 어떤 광부는 출근길이 지옥 길이라는 푸념까지 했다. 이 말이 왜 나왔을까. 탄광 노동은 강도가 가장 높았을 뿐만 아니라 사망 재해율도 가장 높았다. 광부들의 재해율은 일반 제조업 노동자의 거의 10배에 달했으며, 갱속에서 일하는 현장에는 낙반, 붕락, 출수, 가스 누출, 운반 사고 등 목숨을 위협하는 각종 위험이 늘 도사리다 사고를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갱(坑) 속으로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하고 두려움을 조성시킨다, 흑진주가 광부를 기다리는 긴 터널은 물 한 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려주고 공포감을 준다. 안전모에 매달린 등불(캐프)에 의해 막장을 찾아 걷는 걸음은 평탄치 않으며 흐려진 시야 탓에 중심을 바로잡을 수 없다.
광부가 석탄을 생산하기 위해 8시간 동안 작업하려면 지금 입고 들어가는 작업복 외 2벌을 더 준비해야 한다. 점심 식사를 마치면 입었던 작업복을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오후 작업을 하고 퇴근할 때 땀에 젖은 작업복 두 벌을 가방에 넣고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 나와야 추위에서 벗어나며 건강을 지킨다.
제1회 광부의 날 행사를 맞아 이재명 대통령은 어두운 탄광 속 산업화를 일군 광부 헌신을 기억해야 한다며 메시지를 내 놓았다. 이 대통령은 도계에서 광부의 아들로 살았다고 회고하면서 사북사건에도 아픔을 전했다. 광부들이 탄광촌을 형성하며 우리 강원도를 지켜 온 작은 영웅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내년 6월 30일이 되면 딱 하나뿐인 탄광 도계 상덕광업소가 문을 걸어놓고 역사의 뒤안길에서 검은 영웅으로 사라지게 된다
2018년 12월 22일 독일 탄광도 마지막으로 폐광할 때 보트로프지역 프로스퍼하니 광산에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참석하여 갱밖으로 나오는 광부들을 안아주며 노고를 치하하면서 광부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였고 광부가 들고 나온 마지막 석탄 덩어리인 괴탄을 받아 박물관에 전시하는 사례를 남겼다.
그러나 1975년 박정희대통령은 산업전사 위령탑이라는 휘호를 직접 쓰시어 광도 태백에 하사하시어 51년이 지난 이번 행사에 화려한 조명을 받았는데 내년 6월 29일에 대통령이 경동 상덕광업소에 오셔서 마지막 광부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실지 희망으로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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