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현재 살고 있는 자택은 약 27년이 되어가고 이 중 내가 17년을 살아 왔다.
1년에 한번 씩은 어느 부분이든 손을 봐가며 살아왔기에 정이들 만큼 애정이 담겨있는 작은 보금자리다. 이번 여름에 아내는 아이들 방학을 맞아 남편 곁에서 50여 일 머물면서 리모델링을 해주고 떠났다. 베란더 창문이 바람에 흔들릴 땐 이상한 소리를 내다보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고 수돗물마저 약해 설거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보일러 쪽에는 꾀꾀한 냄새까지 풍긴다고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결심을 하고 말았다.
필자는 그 틈새를 이용해 오랜만에 서재정리와 역사자료를 보관한 보물 상자를 꺼내 놓고 1주일 동안 몇 번의 고민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다. 누렇게 바랜 책 냄새를 역겨워하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겼지만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는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기회가 주어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쉽게 생각했던 작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어느 책을 버려야 하는가. 언젠가 그 책이 다시 필요해지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직접 사인까지 하여 정성껏 보내준 책들을 쉽게 버릴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앞섰기에 망설임은 밤잠을 설쳐대게 했다.
언제나 늘 때가되면 책을 버린다고 버려왔는데도 아직도 방안이 가득했다. 실직문화, 월간문학, 수필 등 각종 월간지와 회원들의 작품사진첩, 역사편찬사료 책자들이 필자를 바라보고 있기에 어느 것 하나 버릴 수가 없었다.
아내는 오빠가 늘 서가에 들여놓지 못한 책들은 바닥에 두는 것을 보고 자랐기에 책을 버리라는 말은 차마하지 않지만 청소 때마다 아내의 따가운 눈총은 정리하라는 쪽이였다.
고사성어에 한우충동(汗牛充棟)이란 말이 있다. 수레를 끄는 소가 땀을 흘리고, 대들보까지 닿을 정도로 책이 많음을 이른 말이다. 책이 많아 높이 쌓아두지만 쓸모없는 책이 많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서재를 정리하다 보니 몇 년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버려도 될 만한 책이 줄잡아 50권 정도였다. 책장 한편에 놓여있는 서책 한 권 한 권 이런저런 사연들이 묻어있지만 차곡차곡 추억들을 밖으로 꺼내놓았다. 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대화다. 평소에 내가 투고했던 글이 실린 삼척동해신문 묶음을 소중히 담아둔 상자를 꺼내 놓고 문을 따버렸다.
상자를 열었더니 누런빛을 토해내는 신문들이 우르르 상자에서 탈출하고 있었다, 철끈으로 접어둔 것이 풀리면서 한꺼번에 난장판이 되었다. 아내는 궁시렁 거리면서 이참에 잘 되었으니 폐지로 버리세요 라고 한다. 물론 책이 아니고 신문이라 버리라고 했겠지만.....
나는 대뜸 욱하는 말투로, 아니 이 사람이 무슨 말을 쉽게 하지, 원고 한 줄 한 줄 쓰면서 많은 문헌을 이용해 글을 담은 것을 보관해 두었는데 철끈이 풀려 어지럽게 만들었다고 버리라고 말을 할 수 있냐고 한소리 했더니 아무런 반응을 내 보이지 않다가 그 이틀 날 베란더 양쪽에 북박이장식장을 설치해 주고서는 이곳에다 보관하라고 했다.
말끔해진 서가를 보니 좀 더 일찍 리모델링을 하여 책장 정리를 해야 했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었던 것은 결국 욕심이었다. 가뿐한 마음으로 책을 버리니 욕심도 사라졌다.
그 공간에 마음의 여유가 생겨난 것이리라 인생이란 한 부분을 비우면서 살아야 한다는 깨닫게 되는 시간으로 채워지기에 그 날 아내를 안아주면서 고맙다는 한마디를 전했다.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는 것이 낭비가 아니라 계속 보관하고 있는 것이 낭비라고 하지 않던가. 서재란 학식과 사유의 깊이를 과시하는 장소가 아니다. 돌이켜보면 읽지도 않는 제법 그럴듯한 책들을 잔뜩 쌓아놓고 볼 때마다 마음의 걱정만 했던 어리석음이 뉘우치게 하였다.
그리운 사람에게 그리운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그러나 소박한 서민의 옛 살림집으로 필자가 살아왔던 초가삼간을 떠올리게 한다. 방 한 칸은 사방 8자(가로 세로 각각 약 2.4m)로 둘이 눕기에 알맞은 크기의 공간이다. 방 두 칸에 중앙마루에 부엌을 두는 세 칸짜리 집이였다. 이처럼 아담한 공간이지만 방문과 들창을 통하여 자연이 집안으로 끌려 들어오는 작은 집에서 나는 마음이 풍요롭고 넉넉하거나 평화로울 때 독서를 즐겼다. 그 땐 책도 별로 없었지만 책방에서 대여하여 밤을 지펴가며 읽었던 독서의 향기가 지금보다 더 짙게 깔려 있었다.
가을밤에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으며 잠 못 이루며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리움을 가져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말을 빌리자면 배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별난 생각이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책장도 정리되었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창문이 흔들리지 않으니 독서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어느 누구 한 사람쯤은 그리움의 대상에 올려놓고 이 가을을 맞으면서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고 싶었다. 헤어진 첫사랑의 연인도 좋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도 좋고 떨어져 살고 있는 형제자매도 좋지 않을까. 이러다 보면 세속에 시달린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벼루에 먹을 갈아서 붓으로 썼지만 먹을 가는 동안은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즐거운 시간 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붓이 아닌들 어떠하랴 연필도 좋고 볼펜도 좋다. 다만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찍어서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컴퓨터로 작성한 글에는 기계의 냄새가 묻어있게 마련이다. 그리운 사람에겐 기계의 냄새가 아닌 사람의 냄새를 실어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도 좋고 글씨가 서툴러도 좋다. 그리운 사람에게 그리운 마음을 진솔하게 이야기로 전하면 저절로 시(詩)가 되는 법이다. 그렇게 편지를 쓰는 동안에는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묶은 서재를 정리하고부터는 책상에 앉는 기분이 왜 이리도 좋은지 모르니 오늘밤 두서없이 전하는 편지는 줄줄이 엮어질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