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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박현식 박사 |
바위산인 두타산의 더위는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섭다. 달구어진 암반 위를 걷다 보면 온몸이 열기로 가득 차오른다. 하지만 그 고생 끝에는 반드시 보상이 기다린다. 무릉계곡을 타고 세차게 내려오는 물줄기다. 세상을 다 태울 듯한 더위 속에서 만나는 차가운 계곡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 응어리까지 시원하게 씻어내리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동해시의 명산 두타산(頭陀山) 품에 안긴 무릉계곡을 찾았다. '두타'라는 말 자체가 불교에서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심신을 닦는 수행을 의미하듯, 계곡 초입부터 들려오는 청량한 물소리는 속세의 무거운 번뇌를 단숨에 씻어내 주는 듯했다. 수백 명이 앉아도 남을 만큼 거대한 무릉반석을 지나 숲길을 조금 걷다 보면,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천년 고찰 삼화사(三和寺)가 모습을 드러낸다. 신라 선덕여왕 시절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고려 태조 때 '삼국을 화합시킨 사찰'이라는 뜻의 삼화사로 명명된 이곳은, 이름 그 자체로 상생과 평화의 염원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삼화사 경내로 들어서면 화려한 단청과 웅장한 대웅전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이번 여정의 진짜 목적지는 따로 있었다. 바로 적광전에 모셔진 보물 제1292호, '동해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鐵造盧舍那佛坐像)'이다. 문을 열고 법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거대하고 화려한 여타의 금동불이나 석불과는 전혀 다른, 묵직하고 어두운 철불 특유의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사방을 압도하는 쇳빛의 고요함, 그것은 화려한 겉치레를 모두 걷어낸 본질의 아름다움이었다.
삼화사 철불은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유행했던 철조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는 중앙 귀족 중심의 사회가 흔들리고 지방의 호족 세력이 대두되던 격동의 시기였다. 구하기 힘들고 비싼 구리 대신 주변에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철로 불상을 만든 것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호족들과 선종(禪宗) 승려들의 강력한 의지와 실용적 감각이 반영된 결과였다. 불상의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개의 철판을 이어 붙여 만든 거친 접합선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완벽하게 매끄럽지 않은 그 흔적들이 오히려 격동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냈던 민초들의 숨결처럼 다가와 묘한 감동을 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불상이 지닌 종교적, 미술사적 가치이다. 불상의 등 뒤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오랜 세월을 거치며 마멸되어 육안으로 온전히 읽어내기는 어렵지만,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이 불상이 노사나불(盧舍那佛)임이 밝혀졌다. 노사나불은 불교의 수행을 통해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고 나타난 부처로, 온 세상에 진리의 빛을 고루 비추는 존재이다. 통일신라 말의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고통받던 백성들에게 이 어둡고 묵직한 철불은 단순한 우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온 세상을 비추는 구원의 빛이자, 거친 시대를 버텨내게 해주는 단단한 버팀목이었음이 틀림없다.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은 철불의 얼굴을 바라본다. 거친 홍수 속에 팔다리가 부러져 나가고, 부서진 흔적조차 풍화되어 지워질 만큼 모진 세월이었다. 한때는 세상을 향해 곧게 서 있던 입불(立佛)이, 사지가 잘려 나가는 고통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가부좌를 틀고 앉은 좌불(坐佛)이 되었다. 후세 사람들이 다친 몸을 보듬어 철로 다시 빚어낸 이 좌상 앞에서, 나는 상처 입은 존재가 도달한 깊은 평온을 본다. 모진 풍파를 다 겪고 나서야 마침내 도달한, 가장 단단하고 고요한 자리다. 알맞게 다부진 체구 위에 얹어진 얼굴은 엄숙하면서도 깊은 자애로움을 머금고 있다. 가늘게 뜬 눈은 내면의 성찰을 향해 있고, 굳게 다문 듯하면서도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는 세상의 모든 슬픔을 포용하는 온화한 미소가 걸려 있다. 차가운 쇠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미소에서 피어나는 온기는 법당 안을 따스하게 채우고 있었다. 쇳덩이라는 물질적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천년의 예술, 그것이 바로 삼화사 철불이 가진 위대한 힘이다.
적광전을 나와 다시 무릉계곡의 품으로 걸어 나오는 길, 계곡의 물소리가 이전과는 다르게 들렸다. 두타산 삼화사 철불이 보여준 묵직한 침묵과 온화한 미소는,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수많은 자극에 흔들리던 나에게 '중심을 잡으라'는 무언의 가르침을 건네는 듯했다. 쇠처럼 단단한 마음으로 시련을 버텨내고, 부처의 미소처럼 부드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천년 전의 메시지. 두타산 삼화사 계곡으로의 여정은 단순히 수려한 자연풍경을 소비하는 유람을 넘어, 차가운 철불 속에서 피어난 가장 따뜻한 불심(佛心)과 마주하고 내면을 채우는 진정한 '두타(수행)'의 시간이었다.(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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