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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지난 3일 열린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했다. 박 대통령은은 오랫동안 고민하다 참석해 시진핑 주석 오른쪽 2번째 서열에서 열병식 광경을 지켜보았다.
우리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국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놓고 외교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환영하는 측에서는 이를 계기로 한, 중 관계가 한층 두터워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옆자리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그대로 의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상석에 해당하는 이 자리는 최근 강화된 한·중 관계와 냉랭해진 북·중 관계를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한편,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중국은 6·25 전쟁 때 우리에게 총을 겨눴고, 미국의 동맹·우방국은 하나도 참석하지 않는데 굳이 우리가 참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중견국가로 발돋움하면서 주변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주외교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박 대통령은 중앙부처 실·국장 등을 상대로 한 세미나에 참석해 외교에 있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겠네.” 라고 언급하는 것은 우리나라 국격에 맞지 않는 패배의식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이익이 교차하고, 일본과 북한까지 신경써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외교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영향력이 커지는 중국을 선택해야 하는가’ 란 귀로에 서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왕 히로히토가 항복을 선언한 것은 1945년 8월 15일 낮 12시였다. 일본은 같은 해 5월 8일 나치 독일이 항복하고 나서 석 달 하고도 일주일을 더 버텼다. 일본 왕이 항복했다 하여 전쟁이 곧바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전쟁은 9월 2일 일본 요코하마에 정박한 미국 전함 USS 미주리 선상에서 일본이 항복문서에 정식 서명함으로써 공식 종결됐다.
1945년 9월 2일 오전 9시. 일본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전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승전국인 미국 등 연합군 9개국과 패전한 일본간에 항복문서 조인식이 거행됐다. 먼저 일본 시게미스 마모루 외상과 우메즈 요시지로 육군 참모총장이 문서에 서명했다.
이어 연합군 최고 사령관인 맥아더와 미국 대표 니미츠 제독을 비롯해 중국, 영국, 소련, 호주,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대표가 사인을 했다. 소요된 시간은 불과 15분여. 조인식이 끝나자 2,000여 대의 B29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전함 상공을 편대 비행하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촉발됐던 태평양 전쟁에 마침표를 찍고, 1910년 8월 일본에 국권을 빼앗겨 식민지로 전락했던 우리나라가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한반도 주둔 일본군 항복문서 조인은 이보다 일주일 늦은 9월 9일 오후 4시 조선총독부 중앙회의실에서 열렸다. 존 하지 미 중장과 아베 노부유키 총독간 서명이 끝나자 총독부 건물 앞에 걸려 있던 일장기가 내려지고 대신 성조기가 게양됐다.
하지만 미주리호나 조선총독부의 항복문서 조인식에 조선 대표는 없었다. 수십 년 간 많은 애국지사들이 풍찬노숙하며 일제와 투쟁했지만 승전국의 지위를 얻지 못했다. 임시정부를 이끈 김구 주석이나 국내 진공 작전을 눈앞에 뒀던 장준하 선생과 광복군 대원들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을 듣고서 가슴을 치며 탄식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일제가 지긋지긋했던 한국은 히로히토가 항복을 선언한 8월 15일을 광복절로 삼았지만 중국과 대만은 항복 문서 조인 다음 날인 9월 3일을 항일승리 기념일로 기리고 있다.
중국은 9월 3일을 항일승전일이라 기념하지만 애초 승전국 명단에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은 없었다. 중국의 탄생은 이보다 4년여가 지난 1949년 10월의 일이었다. 전승국 명단엔 장제스가 이끌던 중화민국이 올라 있었다.
일왕은 죽을 때까지 피해국 국민에게 사죄 한 적 없어
비록 전승국 반열에 들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더 화려하게 항일승전을 기념하는 곳은 대만이 아닌 중국이다. 이는 전후 70년 만에 명실상부하게 일본을 제치고 G2로 부상한 국력이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9월 3일 열었던 항일전쟁 승전 70주년은 대일 총공세를 폈다고 본 것은 지난 달 27일에는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동중국해에서 구축함과 전투기 등을 총동원해 무력시위를 벌였고 중국 언론은 일왕(히로히토)은 죽을 때까지 피해국과 그 국민에게 사죄를 표명한 적이 없으니 그 왕위 계승자(아키히토 일왕)라도 사죄하고 뉘우쳐야 한다며 일왕을 향해 화살을 돌리면서 일본인들이 금기시하는 일왕을 건드린 것이라고 보여진다.
아이러니한 것은 반대를 무릅쓰고 평화헌법 개헌과 안보 법안의 국회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는 아베 정권으로서는 중국의 이런 태도가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법안 통과에만 도움이 된다면 중국과의 적당한 마찰로 손해 볼 것 없다는 계산이다.
시진핑의 중국 역시 아베의 이런 속셈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중국이 종전 70주년을 맞아 대일 공세를 늦추지 않는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무장할 테면 해보라는 메시지다. 여기에는 더 이상 중국이 과거 일본군에 당했던 그런 종이호랑이가 아니라는 자신감이 묻어난 것이다. 여차하면 대국으로 구겼던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도 깔려 있다고 본다.
걱정되는 것은 우리나라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만 대하면 한없이 움츠러드는 우리나라 정부가 한심해 보일 때가 잦다.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승리 70주년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다. 세계 2강으로 발돋움한 중국의 위상을 과시하려는 듯 많은 병력과 최첨단 무기 퍼레이드를 베이징 톈안먼 광장 열병식에 선 보인 것은 일본이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과 진정한 사과 없는 군국주의로 회귀하는 걸 중국이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나라 대통령까지 초청했다면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 낀 우리나라는 100여 년 전의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때보다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징비(懲毖)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지금 일본이 헛 수작 부리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