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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수 탄광지역활성화센터 학술연구소장 |
폐광 이후 탄광지역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갱도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삶이 깃들어 있던 공간들이 먼저 사라진다. 광부들이 살던 사택, 아이들이 뛰놀던 골목, 퇴근한 광부들이 모여 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이던 마당은 개발과 노후화라는 이름 아래 하나둘 철거된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탄광지역에는 산업시설은 남아 있어도 정작 탄광촌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공간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도계 느티나무 주변은 매우 특별한 장소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일본인 소장 객실을 비롯해 고급 간부용 주택인 2칸사택과 4칸사택, 광업소 관리자들이 거주하던 연립아파트, 그리고 1970년대 일반 광부들이 살았던 명랑사택이 한 공간 안에 남아 있다. 비록 일부 건축물은 원형이 훼손되었지만, 탄광촌의 계층구조와 주거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는 매우 크다.
한국의 탄광촌은 단순히 석탄을 생산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일본인 기술자와 관리자, 한국인 간부, 일반 광부와 그 가족들이 각기 다른 주거환경 속에서 살아가던 하나의 사회였다. 따라서 사택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구조와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자료다.
현재 느티나무 주변은 이러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소장 객실에서 시작해 간부사택, 광부사택, 연립아파트에 이르는 주거 형태의 변화는 곧 한국 석탄산업의 발전 과정과 탄광촌 생활사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처럼 다양한 유형의 탄광주택이 한 공간 안에 집적된 사례는 국내에서도 매우 드물다.
따라서 이제는 개별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수준을 넘어 느티나무 일대를 「탄광사택유산 보존지구」로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보존지구의 핵심은 건물 한 채가 아니라 공간 전체의 역사성을 유지하는 데 있다.
보존 방식도 단순히 건물을 남겨두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원형이 남아 있는 건물은 최대한 복원하고, 이미 사라졌거나 훼손된 건물은 고증을 통해 재현해야 한다. 또한 현재 다른 지역에 남아 있는 다양한 유형의 광부사택을 한 동씩 이전 복원하거나 실측 복원하여 배치한다면, 도계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탄광사택유적지로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인 소장 객실은 식민지 시기 광산 경영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활용할 수 있다. 2칸사택과 4칸사택은 간부계층의 생활공간을 재현하고, 명랑사택은 1970년대 광부가정의 생활상을 그대로 복원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연탄아궁이와 부엌, 재봉틀, 교복, 연탄집게, 탄광작업복 등을 갖춘 생활사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생생한 체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적 활용 방안도 다양하다.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광부 가족 하루 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당시의 생활문화를 체험하도록 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연탄을 갈아보고, 도시락을 준비하고, 광부의 출근과 귀가 과정을 역할극 형식으로 체험할 수 있다. 단순한 관람보다 훨씬 효과적인 역사교육이 될 것이다.
대학생과 연구자들을 위한 활용도 가능하다. 탄광촌 생활문화 연구소와 구술아카이브를 설치하여 전국의 산업유산 연구자들이 장기 체류하며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도계는 산업유산 연구의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다. 사택 자체를 연구자 숙소와 레지던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문화관광 측면에서는 ‘탄광촌 골목박물관’ 조성을 제안하고 싶다. 개별 건물을 관람하는 방식이 아니라 골목 전체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골목마다 광부들의 이야기와 사진, 구술자료를 배치하고, 스마트폰 해설 시스템을 통해 당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면 관람객들은 마치 1970년대 탄광촌을 걷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탄광촌 밥상 체험, 연탄구이 체험, 광부의 날 행사, 광부가요 공연, 탄광촌 사진전 등을 연계한다면 살아있는 생활문화 관광지로 발전할 수 있다. 산업시설 중심의 관광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중심으로 한 관광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산업유산 보존의 흐름은 이미 시설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독일 루르 탄전, 영국 웨일스 탄광촌, 일본 군함도 역시 이제는 광산시설보다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주거공간과 공동체 문화를 중요하게 평가한다.
도계 느티나무 주변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의 가치는 오래된 건물 몇 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 소장 객실에서 광부사택에 이르기까지 100년 동안 이어진 탄광촌 사람들의 삶을 한눈에 보여주는 데 있다. 만약 이 공간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한다면, 도계는 단순한 폐광지역이 아니라 한국 산업화의 기억을 간직한 살아있는 역사마을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사람들이 도계를 찾는 이유가 갱도나 폐석장이 아니라, 느티나무 아래 펼쳐진 탄광촌의 삶과 기억을 만나기 위해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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