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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세계유산위원회 결정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딴소리를 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다. 일본 측의 김 빼는 발언은 우선 강제 노역이라는 역사적 오점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4월 한국의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 1천여 명이 72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일련의 배상 및 위자료 청구 소송 등에 대한 법적 책임 소재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교묘하고 계산된 발언인 것이다.그런데 외교부는 논란의 문구를 두고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이뤄 낸 값진 성과”라며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이 내용을 뜯어보면 외교부의 자화자찬은 혼자서 성급하게 터트린 샴페인이다.
국제사회에서 강제 노역은 통상 “enforced labor(강요된 노동)”로 표현하는데, 백번 양보해 문제의 문구가 그런 뜻을 가졌다 하더라도 강제 노역의 주체가 전혀 명시돼 있지 않아 한마디로 헛방이라는 말이다. 문제의 문구도 “등재결정문”과 주석이 아니라 3차례 과정을 거쳐 겨우 찾아볼 수 있는 일본 측 대표 발언으로 숨어 있어 국제사회 공식 언급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
앞서 사토 대사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말하며 “forced labor(강제노동)” 대신 “forced to work(강제노동을 시키다)” 란 표현을 사용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요시히데 관방장관 역시 “forced to work”가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시다 외무상이 명확히 했다고 거들었다. 일본은 일어판 번역문에서도 일하게 됐다는 표현을 사용해 강제성을 흐렸다. 강제 노역의 영문 표현을 둘러싸고 강제 노동이라는 한국과 다른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애초 한국은 일본의 징용시설 문화유산 등재 시도가 알려지자 등재 불가라는 입장을 정했고 여의치 않을 경우 강제 징용 사실 명기에 승부를 걸었다. 일본의 목적은 강제 징용시설의 세계유산 등재였음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협상 결과 일본은 문화유산 등재란 성과를 얻어 환호하고 있고, 한국은 원하던 바를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협상 결과를 두고 우리의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이뤄낸 값진 성과라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어 국민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얻어낸 것은 사토 구니(佐藤地) 주 유네스코 대사의 “강제 노역”(forced to work)이란 한마디와 정보센터 설립 등 희생자를 기리는 시설을 만들겠다는 구두 약속뿐이었다. 등재 결정문 본문도 아닌 각주에 일본 대표단의 발언록을 연결해, 그 발언록의 한 귀퉁이에 나오는 강제 노역이란 말 한마디뿐인데, 문헌학자나 서지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일반인들이 어디서 그 말을 찾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빛바랜 사진 속 그들은 훈도시(속옷)
하나만 걸친 채 탄광 안에서그마저도 일본 관리들의 잇따른 부인성 발언으로 희석되고 있는데 정보센터를 설립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질지 의문이다. 일본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을 제재하거나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와 합의한 내용을 지키는 것은 전적으로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그렇게 나올 줄 몰랐을까. 그만큼 우리 외교가 순진했던 걸까.
그렇게 해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한이 반이라도 풀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빛바랜 사진 속 그들은 훈도시(속옷) 하나만 걸친 채 탄광 안에서 맨몸으로 검은 땀을 흘렸다. 채찍에 맞아 목덜미와 등은 깊은 흉터투성이고 앙상하게 야위어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청년들의 모습, 사진을 볼 때마다 국민들 마음은 분노로 치닫고 있는데 외교부는 축배를 들었으니 하늘도 울고 땅도 울어야 속이 풀릴 지경이다.
세계유산 등재에 목맨 일본이 제시한 미끼를 순진하고 어리숙한 우리 정부가 미끼 바늘에 덥석 물려버린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에 다급한 일본보다, 표 대결까지 가는 상황이 되어 혹시라도 패배하게 될까 겁낸 우리 정부가 더 마음을 졸였기 때문은 아닐까란 생각까지 들게 한다.
일본과의 외교는 왜 다 이런 식인지 모르겠으나 겉은 그럴 듯한데 알고 보면 알맹이가 별로 없는 우리 정부라고 보여 진다. 일본이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고 국민들은 한마디씩 내뱉었는데 정부는 왜 모르고 있을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와 관련한 외교 현안들이 걱정되는 7월의 하늘이 검게 보일 때 태풍 11호 낭카가 우리 국민들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면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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