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태수 한국석탄산업유산 유네스코등추위 공동대표 |
강원도가 올해부터 2030년까지 5년간, 태백·삼척·정선·영월 등 4개 시군에 총 2조3669억 원을 투입하는 ‘석탄산업전환지역 중장기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기업유치 129개사, 고용창출 3만 명, 연간 관광객 150만 명이라는 목표는 분명 과감하고 야심차다.
장기간 침체에 놓였던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정책 의지 또한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이번 계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중대한 공백이 눈에 띈다. 바로 석탄산업유산의 보존과 계승에 대한 전략적 비전의 부재다.
현재 태백·삼척(도계)·정선 지역에는 국내 산업화의 핵심 동력이었던 석탄산업유산이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갱도, 선탄장, 사택, 철도, 광업소 건물 같은 유형유산은 물론, 광부의 노동문화·공동체 기억·탄광촌의 생활사라는 무형유산 역시 살아 있다. 그리고 이 유산들은 지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빠른 속도로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석탄산업전환이라는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에너지 전환과 산업구조 변화는 세계적 흐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환의 방식이다. 석탄산업도시로서의 정체성을 지우고, 과거를 단절한 채 새로운 산업만을 이식하는 개발은 지역을 다시 한 번 주변부로 밀어낼 위험이 있다. 산업유산을 잃은 지역은 이야기와 서사를 잃고, 서사를 잃은 지역은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산업전환 사례들은 예외 없이 산업유산 보존을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독일을 비롯하여 영국과 프랑스·인도네시아·일본의 경우 폐광과 노동의 역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 지역 재생의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대체산업과 산업유산의 보존을 병행함으로써 경제성과 정체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강원도 역시 선택지는 분명하다. 2조 원이 넘는 막대한 재원 가운데 일부만이라도 투입해, 현존하는 유·무형의 석탄산업유산을 체계적으로 조사·정리·보존하고,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는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단기 성과 중심의 개발 압력으로부터 유산을 보호하는 국제적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세계유산 관광은 체류형·학습형·재방문형 관광을 유도하며, 대규모 시설 투자보다 지역 주민 참여형 경제를 활성화한다. 이는 대체산업이 안착하기까지의 공백기를 완충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광부의 노동기술, 안전 의식, 공동체 규범, 탄광촌의 생활문화는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진다. 세계유산 추진 과정은 이러한 무형유산을 체계적으로 채록·아카이빙하는 동력이 된다. 문제는 시간이다. 대체산업 육성과 기업 유치는 수년, 길게는 십수 년이 소요되는 과제다.
반면 남아 있는 유형의 탄광유산과 기억의 주체인 사람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지금 보존하지 않으면, 다시는 복원할 수 없는 자산들이다. 따라서 폐광지역 개발정책은 ‘대체산업이냐, 유산 보존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동시에 추진해야 할 이중 전략이어야 한다.
석탄산업전환지역은 국가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른 공간이다. 그렇다면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은 단지 일자리 숫자와 관광객 통계로만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기억을 지키고, 역사를 남기고, 정체성을 존중하는 일 또한 중요한 보상이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말씀처럼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필요하다.” 강원도에서 선제적으로 실천해주길 요청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