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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탁 논설위원 |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45여 명의 성도들이 찬양과 기도로 주일 예배를 시작한다.
모든 교회가 주보를 발행한다. 주보의 성격은 여러 편을 뜻하거나 다양한 이미지로 발행된다. 교회의 주보를 보면 그 교회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어느 번역가의 칼럼을 읽는 적은 있지만 혹자들이 보는 개념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같을 수도 있다.
교인들이 많은 교회는 화려하게 만들 수도 있고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보통 수준은 넘을 만큼 아름답게 꾸며 놓는다. 사실상 주보는 그 교회의 얼굴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가난한 교회는 직접 제작하여 나름대로 이미지를 부각시켜 교인들의 눈을 밝혀주는 주보로 태어난다. 한국교회에서는 교회마다 차이가 있으나, 천주교회에서는 교구에서 주보를 만들어서 사용하며, 성공회와 개신교회에서는 교회마다 다르게 만든다고 한다.
필자는 책장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주보가 23권이 있다. 1개월에 4매를 제본하면 1년 동안 약 50매 주보를 1권의 단으로 묶어 놓은 게, 마치 에세이같은 책으로 분장 되어 보물로 꽂혀 있다. 책장에 있는 주보들은 필자가 만든 게 아니다. 교회 장로이자 필자의 중∙고등학생 때 은사님이 깨끗하게 만들어 매년 1월 넷째주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 50년 전 제자 손에 들려준 이 주보는 귀한 유산으로 고이 간직되어 있다.
그런데 4년 전부터 주보가 나의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4년 전 10월에 장로님이 하느님의 부름으로 우리와 작별하고 천국에 계시기 때문에 귀하고 귀중한 주보를 받지 못해 서운한 마음에서 이 글을 적는다.
2015년 광양경제 신문 칼럼에 기고된 어느 번역가의 글에는 보수적인 교회는 예수님의 초상으로 도배하고 진보적인 교회는 민중 판화를 활용해 사회운동을 고취한 곳이 있다고 적었다. 물론 주보의 우위를 비교할 순 없으나 다만, 대형교회 주보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낀다고도 쓰셨다.
칼럼을 인용하면 헌금에 대한 내용들이 눈을 사로잡고 있다고 기고한 필자는 30년 넘게 목회 현장에서 활동해 왔으나, 한 번도 주보에 헌금한 사람들 이름을 올린 적은 없었다고 기고하면서... 그런데 얼마 전 대형교회 참석했다가 주보를 보고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한 면이 전부 헌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고 한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워낙 착해서 말을 안 할 뿐이지, 속으로는 너무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지도 모른다. 결국 헌금기록과 헌금 종류 때문에 기가 죽어 교회에 가지 못하고 있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보다 엄청 많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도 게재하였다.
교회는 결코 돈을 거두는 은행 창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주보에 기록돼 올라오는 성도들의 이름을 보면 마치 은행 적금 기록을 보는 것 같다고 하면서 은퇴한 노인네가 별의별소리를 다하고 있다는 핀잔줄지 모르지만, 지금 한국 교회는 당장 주보를 개혁하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기에 무모한 잔소리를 해본다는 소신을 밝혔다.
예수는 왼손이 한 것을 오른손이 모르는 것처럼 하라고 그렇게 강조하였는데 어쩌자고 교회는 성경은 가르치지 않고 그 반대 행동만을 하고 있을까. 필자 역시 곱씹어 보고 싶으나, 내가 섬기는 교단은 그러하지 않기에 베시시 웃고 만다.
누군가는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는 성경 구절을 깨달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주보는 거울처럼 예쁘게 보여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장로님이 매년 주신 주보를 지금은 받지 못하고 있지만 국어를 가르쳐 주신 나의 은사님을 기억하면서 필자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305장을 들으며 이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