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달에는 수원 화성 궁을 돌아보고 오후에는 5월에 개통한 520m 여주 남한강 대교를 향해 이동했다, 수많은 관광객이 출렁다리에서 추억을 담으며 천년고찰 신륵사로 발길을 두고 있기에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10월에는 세종대왕이 잠든 영릉을 찾아 30명의 동호인들은 여주를 향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영동지방은 가을비가 여섯째 주루룩 내리는 빗길을 뚫고 3시간여 동안 달려 도착했다. 그곳 하늘은 우리 일행들을 반기려는지 먹구름만 깔아 놓고 비는 뿌리지 않았다.
이번 주 10월 산행 일은 엊그제 한글날을 보낸 12일 일요일이라 감회가 양념처럼 맛을 내는 시간이었다. 영릉 안내소를 거쳐 박물관을 찾아 관람해보니 우리의 한글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했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소리가 서로 맞지 않아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펼치지 못하니 내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라고 한 세종의 어명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했지만, 교과서에 실려 있는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이 그 증거다.
우리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던 일제강점기 민족 문화재 수호자 간송 전형필 선생이 거액에 구입한 해례본은 6·25전쟁에도 소중히 보관시켜 왔기에 국보 70호로 세계 문화기록 유산에 등재되어있다. 조선이 세종이고, 세종이 조선이라는 말도 있듯이 세종의 업적은 셀 수 없이 많다. 그중 으뜸은 아마도 백성을 근본으로 한 애민 정신으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일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 중 훈민정음처럼 창제 시기와 참여자가 기재된 언어는 찾을 수 없다.
올해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제579돌을 기리는 날로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려 이를 기념했다. 한글날은 1991년부터 2012년까지 공휴일에서 빠져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지정 휴일이 되었다. 그저 평범한 휴일 하루가 아닌 한글의 우수성과 위대함 그리고 편리성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영릉에서 가졌다.
표현과 사용이 편리한 한글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슬기로운 한글 사용이 오래도록 후손에게까지 이어지길 소망하면서 드넓은 영릉을 향했다. 곱게 깔린 잔디와 운치를 피워내는 소나무와 각종 수목과 작은 독서실은 그야말로 감탄을 북돋아 주기에 가벼운 발걸음은 900여 거리에 있는 효종대왕의 영릉까지 도달시켰다. 깊어가는 가을을 알리는 낙엽도 보이고 노랑나비 떼가 날아다니고 조잘대는 풀벌레 소리와 영릉을 지키는 이름 모르는 새소리를 귀에 담으면서 명성황후 생가를 찾아 떠났다, 약 20여 분 후 명성황후 생가 주차장에 도달했다.
우리는 비운의 황후라고 부르고 있기에 정말 역사의 순간을 꼼꼼히 눈에 담아 보았다.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모든 글을 읽으려니 분통이 터지고 나라의 국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 후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바램을 두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기는 하나 아직도 문해력 증진에는 중점을 두었으면 한다. 필자는 가끔 시청하는 공영방송 프로그램 “우리말겨루기”를 볼 때마다 한국어 문해가 얼마나 까다롭고 쉽지 마는 않다는 걸 알게 했다. 그래서인지 한글은 형용사와 은유가 많고 인기도 많다. 외국인이 배우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다행히 세계 곳곳의 세종학당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어 다행스럽기는 하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한국국제협력단에서 한의(韓醫)로 봉사하고 있는 송영일 한의사의 말에 따르면 강제로 이주 된 고려인 환자들은 “일없다.” “아짐찬하다” 등의 단어를 꾸준히 사용하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고 하여 민족의 힘을 북돋아 주고 있다. 우리지역도 조선 건국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준경묘와 영경묘가 있다. ‘이곳을 잘 살리면 지역 경제의 초석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면서 모든 문화재를 지금쯤 세상 밖으로 내보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