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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현충일 날 오후에 멀리 계시는 누님이 고향땅에서 천연 잔디를 지붕삼아 40년을 사랑의 이불로 덮고 양지바른 곳에 잠들어 계시는 부모님 산소에 들리겠다고 창원에서 출발했다. 조카며느리의 전화를 받고 누님을 마중하러 포항까지 내려가서 남매의 정을 나누었다.
한적한 해변에서 에멜랄드 빛 보다 더 진한 동해안 바다를 바라보면서 활어 회 한 접시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울진군 원남면 7번 국도를 지날 때 저녁노을이 붉게 비치는 옹벽위에 나지막한 꽃대에서 피워 낸 코스모스를 보고 ‘아~’ 감탄사를 우리는 입에서 토해 내다.
요즘 기상이변으로 꽃의 개화 시기가 들쑥날쑥이라고 하지만 가을꽃이 6월 초순에 핀 것 치고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다. 노란 민들레꽃이 지척에 피어있는 것을 보다가 하얀 민들레꽃을 보면 우리 꽃이네 라며 바라보고 한국의 꽃을 반갑게 간직하듯 사랑을 나눔으로 지피면서 살아가는 혈육에서 삶을 함께하는 승용차에 동승한 나의 혈육들에게 누님은 아주 연하게 피어나는 코스모스 꽃을 보시고 그 오랜 옛 이야기를 꺼내 놓으셨다.
내가 시집을 갓 왔을 때 맏동서에게 들은 꽃 이야기가 있었다면서 한줄기 동화를 필름으로 돌리시었다. 시집살이가 혹독스런 며느리가 아침에 산에 오르다 소나무 숲길 양지바른 곳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며느리밥풀꽃을 발견하고 털썩 쪼그리고 앉아 매만지면서 하는 말이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다니는 산행길인데 너는 왜 그동안 내 눈에 띄지 않았다가 이제야 보이느냐. ‘꽃대가 너무 작고 길가에 피어 있어 하마터면 밟고 지나갈 뻔 했잖아’라며 자기 신세가 비참해 가까이서 들여다 보았다. 꽃이 앙증맞도록 아름다웠고 마치 초롱꽃처럼 걀쭉하게 붉은 꽃잎은 연지 바른 젊은 여인이 살며시 입을 벌린 듯하고, 그 안에 하얀 밥알처럼 생긴 것이 두 개 들어 있었다는 꽃 이야기를 시작으로 삼척까지 왔다.
며느리는 꽃에 붙어있는 밥알 두 개를 따 먹으면서 고단한 시집살이의 시간을 보내게 되듯이 나도 시집살이에 한을 품으며 친정부모님을 원망하며 눈물로 지샜다는 과거사를 50년 뒤안길에 회고하셨기에 누님께서 설움에 북받치어 들려준 며느리밥풀꽃을 문헌을 통해 알아보았다.
며느리밥풀꽃은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었다. 옛날 가난한 집에 시집온 며느리가 밥을 하다가 뜸이 들었나 보려고 밥알을 조금 입에 넣고 있는데, 표독스러운 시어머니가 이를 보았다. 시어머니는 혼자 밥을 먹는다면서 몽둥이로 며느리를 때렸고 며느리는 밥알을 입에 문 채 죽었다. 마을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뒷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는데 이듬해 이름 모를 풀이 나왔으며 가을에 꽃이 피었다. 꽃 모양이 꼭 맞아죽은 며느리의 입술처럼 붉고 그 안에 하얀 밥알을 물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며느리밥풀꽃은 현삼과 새애기풀로, 벼가 누렇게 익을 무렵에 꽃이 피며 꽃며느리밥풀꽃, 알며느리밥풀꽃, 애기며느리밥풀꽃, 새며느리밥풀꽃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며느리밥풀꽃과 비슷한 풀로 며느리밑씻개가 있다.
사돈 집 마당 귀퉁이에 자라는 1년생 덩굴식물로, 1∼2m 길이의 줄기와 잎에 갈고리 같은 가시가 달려 까끌까끌하다. 7∼8월에 흰색에 연한 붉은 꽃이 핀다.이 풀 역시 며느리의 설움을 안고 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밭에 김을 매다가 대변을 보는데, 시어머니는 부드러운 깻잎으로 밑을 닦고 며느리한테는 가시가 달린 풀잎을 뜯어 주었다고 한다. 며느리가 껄끄러운 잎으로 밑을 닦았으니 얼마나 따끔따끔 아팠을까,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진다.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낸다는 유행가 가사의 설움을 이해 한다
일본에서는 이 풀을 의붓자식엉덩이씻개 라고 하는데 냉대하증이나 자궁탈수, 옴, 질 세정제로도 쓰인다고 한다. 꽃마다 슬픈 사연과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고 놀라기도 하지만 작은 꽃을 통해 인생을 생각하고 우주를 바라보게 한다. 세상에는 꽃 같은 인생이 있고 인생 같은 꽃이 있다.
소나무 숲길에 숨은 듯 피어 있는 며느리밥풀꽃을 보면서, 가난한 시절을 살다 간 며느리의 슬픈 삶처럼, 그리고 내 누님이 살아온 여정을 스토리에 담아 보니 여자의 일생이 유행가 노랫말처럼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낸다는 여자의 일생, 이미자씨의 노래 가락이 귓전에 맴돌았다.
간절하게 피워낸 꽃의 생명과 시집 온 며느리의 운명을 비교할 수 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산속 한적한 곳에 지극정성으로 핀 꽃들을 보면서 세상에 허튼 인생이 없다면 허투루 핀 꽃도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올벼쌀 나올 때쯤 피어서 서리를 맞으면 이내 시들고 마는, 짧지만 아름답고 눈부신 존재, 며느리밥풀꽃. 이 꽃 앞에 남자의 사랑을 담아주고 싶다. 이제부터 내가 며느리밥풀꽃과 며느리밑씻개를 생각할 때마다 옛날 며느리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떠올리고 어디에서나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어졌다.
옛 말에 오죽했으면 시집살이를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에 땡초보다 더 맵다는 이야기와, 딸은 가을볕에 내보내고 며느리는 봄볕에 내보낸다, 굿하고 싶어도 며느리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어 안 한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 뒷 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 등, 웃지못할 며느리 이야기들이 이 시대에 남아 있다. 지금은 며느리 전성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사는 세상이라고 한다.
얼마 전, 노인학대 72%가 자녀와 며느리라는 보도를 보았다. 우리나라 노인 7명 중에서 한 명이 자식, 특히 며느리에게 정서적 신체적 경제적 학대를 받고 있다니, 이제는 시어머니밥풀꽃이 피고, 시어머니밑씻개풀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시대가 온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