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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주논단/ 아침 향기를 맡으면서 차 한잔으로
이희탁 논설주간  |  lht47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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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5.04.08  20: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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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가끔 우리 지역 양양 낙산사에 자주 들려 동해안을 바라보며 자연에 심취해보곤 한다. 중현스님께서 이런 글을 남기셨다. 낙산사는 매우 특이하게도 사찰 안에 성문이 있다. 일주문을 지나 야트막한 동산을 오르면 얼마 가지 않으면 제법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바로 그 위에 홍예문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성문이 서 있다. 생긴 것은 누가 봐도 성문이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성벽이라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특이하다. 

왜 이 자리에 사찰의 건축 양식과 아무런 상관없는 성문이 있을까! 속세의 번잡함에 잔뜩 주눅 든 일주문과 달리, 홍예문은 동산을 조금만 오르면 멀리서부터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낙산사를 방문하는 이들은 이곳에 이르러 비로소 낙산사에 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시골에서 올라온 촌부의 눈에 성문 안 도성이 별천지로 느껴지듯, 홍예문을 지나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바닷가 야트막한 동산에 넓게 자리한 낙산사는 온 도량이 기도처이고 온 도량이 수행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곳이야말로 속세를 벗어난 곳, 즉 출세간(出世間)이다. 홍예문은 세속을 떠나는 문이자, 해탈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성문으로 지은 이유가 저절로 수긍된다. 온갖 번뇌로 물든 속세로부터 수행도량을 수호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일찍이 나옹선사께서 이렇게 노래한 좋은 글이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내려놓고 탐욕도 내려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란 시 구절을 남겼는데,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삶이 바람직한 삶이다. 마치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관망하기만 해서는 제 밥그릇 챙기기도 힘들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속세를 떠나거나, 속세에 살더라도 속진에 물들지 않는 삶을 살라는 범어를 가르치는 고견일 것이다.  

우리 민초들은 나옹선사의 말씀처럼 말없이, 티없이, 맑고 깨끗하게, 살고 싶어도 세상이 도와주지 않아서, 물처럼 바람처럼, 아기자기하게 살고 싶어도 주변에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아 어찌할 수 없이 때만 기다리고 있는 셈법 속에서 세월을 보낸다. 우리는 별 볼 일 없는 중생이라서 나옹 스님의 당부대로 일상을 꾸려 가기에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 지경이라고까지 글에 남기셨다. 

기도하고 예불하며, 낙산사에서 1박 2일 동안 머물렀다는 글 가운데, 지내는 시간 내내 말없이, 티 없이 그리고 맑고 깨끗하게 지내고자 노력했고, 물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지내려 하였으나 내 안의 성냄과 탐욕은 잠시나마 힘을 잃었다고 하셨지만, 기도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인간의 본능은 나를 또 그렇게 만들겠지만 그래도 잠시라도, 필자도 그런 시간을 가져보고 싶어졌다.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은 제 못 난 것을 남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다. 나의 게으름을 언제까지 남 탓, 세상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평생을 남 탓만 하고 산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서 낙산사 같은 기도처가 이 사바세계의 한가운데 있다.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혀 허우적거리다가도 낙산사 같은 빼어난 도량에서 하룻밤 기도한다면 잠시나마 어리석은 자신을 돌아보면서 귀감가는 글을 써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늘 외로움에 말려들면서 살아가고 있다, 쓸쓸함에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첨가되고, 쓸쓸함과 그리움이 상호 촉매하여 서로가, 서로를 고조시킨 결과를 만들어낼 때, 복합적인 감정이 바로 외로움이 된다고도 하셨다. 

누룩 없이 막걸리가 나올 수 없듯, 쓸쓸함이 외로움으로 변질되려면 누군가를 향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를 향한 갈망은 혼자 있음을 굳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 이것이 더 뿌리 깊고 더 광범위하다. 한마디로 홀로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외로움은 싹을 돋구게한다.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쓸쓸함을 견디지 못하고 쓸쓸함과 외로움을 동일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잃어버린 나의 반쪽”을 간절히 원하는 것은 쓸쓸함과 외로움을 혼동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발산하는 몸부림이다.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모든 인연들이 곧 나의 친구라고 믿지 않는 사람은 멘탈이 강한 사람이듯, 고분고분한 사람이든 성질 사나운 사람이든, 배려심 깊은 사람이든 이기적인 사람이든, 다른 이들의 위에 군림하지 않고 그들과 나란히, 함께 걸어간다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이 나의 수행처가 되고 나의 기도처가 되어 내 마음의 행복을 안겨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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