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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4일 일본 이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는 최초의 사도 광산 추도식이 열렸다. 1940년대 1,500여 명의 한국인이 강제 동원돼 혹독한 노역에 시달리며 피를 토한 지 80여 년, 1967년 일본이 사도 광산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을 지정하며 역사 닦아내기를 시작한 지 60여 년 만이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을 전후하여 사도 광산에 1,141명의 한국인이 끌려와서 강제노역에 당했다고 알려진 사도 광산이다.
일본 정부에서 사도 광산을 2018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보로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강압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강제노역을 당했던 한국과 중국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표명했었다.
2022년 2월 1일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보로 발표했으며, 일본 정부에서 강제 동원된 한국인 희생자에 대한 합당한 설명과 추도예식에 대한 요청을 수용함에 따라 2024년 7월 27일 등재가 확정되었다.
하지만 11월 24일 열린 추도식에서 이 약속이 온전히 지켜지지 않아 한국인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사도섬은 일본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의 중부 지역 동해 연안에 있는 니가타현에 속한 섬으로 일본에서 6번째로 큰 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섬 전체가 사도 시를 이루고 있으며 제주도의 절반 정도의 크기이다.
사도섬에는 자연 금과 휘은광의 광맥이 묻혀 있어 11세기 후반에 이미 사금의 형태로 금이 산출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601년 금북산에서 금맥이 발견되었으며 초기에는 1년에 금 400kg, 은 37.5t이 산출되어 일본 최대의 금광으로 알려진 광산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극심한 노동에 시달렸던 사도 광산의 추도식 관련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시민단체가 최악의 외교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일 역사 정의 평화행동은 2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강제동원 피해자의 명예는 또다시 훼손됐고 시민들이 얻은 것은 수치뿐이라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죄부터 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사도 광산 추도식은)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사도 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동의해주는 대신 일본 정부가 약속한 후속 조치 중 하나라며, 결국 사도 광산 추도식은 민간단체 주최로 추도의 대상도 불분명한 상태로 제대로 된 추도사 하나 없이 개최됐다고 말했다.
추도식이 한국의 불참으로 반쪽으로 열린 데 대해 일본이 오히려 유감을 표명한 것을 두고도 우리 정부가 엄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단체는 윤석열 정부는 일본 정부의 유감 표명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항의조차 하지 않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는 스스로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최악의 외교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학습효과를 찾아볼 수 없는 나라냐고 비웃음당해도 할 말이 없다. 일본은 지난 2015년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 당시에도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센터 설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센터는 군함도 인근이 아닌 도쿄에 설치됐고 강제성을 부인하는 자료까지 버젓이 자리했다. 일본은 사도 광산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한국에 또다시 약속했다, 우리가 맞닥뜨린 것은 강제노역 문구가 실종된 전시관과 강제성 희석 시도로 점철된 추도식 진행,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력이 있는 인사의 파견이었다.
논란의 중심이었던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은 추도식에서 사과는 고사하고 강제노역이나 강제동원 등 강제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뱉지도 않았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들에게 환향녀라고 손가락질하고, 해방 후 만신창이로 고향에 돌아온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더럽다며 침을 뱉듯, 되풀이되는 폭력의 역사에서 본능적으로 억울하고 서러운 피해자 편에 서느니 차라리 가해자의 편에 서는 것이 낫다고 여긴 것인지 우리가 정부에게 묻고 있다.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며 우리 국민의 피해자들 가슴에 대못을 박은 일본에게 정부는 뒤통수를 맞고도 정작 누구의 뒤통수에 맞았는지도 모르는 채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내가 한심해지기 싫어서 손과 발을 싹싹 빌어서라도 애원하는 글을 읽으시고 단단한 후속 조치를 해주었으면 싶어 첫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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