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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프로메데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인해 사지가 묶여 독수리에게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헤파이스토스는 불의 신이고, 디오니소스는 어둠(포도주)의 신이라고 한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바쿠스)는 예술의 신이기도 하다. 예술은 향기롭게 순화된 흥취이지만, 상대를 제압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정치나 경제나 스포츠는 악마적인 광기의 춤이다. 예술 혹은 인문학을 통해 인간의 악마적인 불을 순화시키는 데에 우리의 아름다운 미래가 있다.
20여 년 전 어떤 사람이 저녁이면 빨갛게 불을 켜는 교회의 십자가조명을 하얀색으로 바꾸자는 의견을 교회연합회 홈페이지에 올린 것이 떠올랐다. 당시 그가 살던 곳은 산위 아파트였는데 저녁이면 바로 앞 교회 십자가가 섬뜩한 빨간 빛으로 베란다 앞에 버티고 있어 베란다를 쳐다볼 때마다 야릇한 느낌이 든다는 주민의 불평을 들었다. 그래서 기왕이면 신자인 내가 전달하는 게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불 켜는 시간을 조정하거나 하얀색으로 바꿔줄 것을 제안 했다는 글을 읽었다.
인간의 몸은 90퍼센트 이상이 물로 되어 있지만 불을 활용하는 우주적인 존재이다. 동양에서는 우주의 원소를 물(水), 불(火), 흙(土), 쇠(金), 나무(木) 등 오행(五行)이라고 말하고, 서양에서는 물, 불, 흙, 공기(四行)라고 말한다. 프랑스 비평가 바슐라르가 쓴 불의 정신분석은 예술작품들을 물과 불과 흙과 공기 등의 네 가지 원소를 바탕으로 해서 분석하고 논한 명편이다. 술은 불을 품고 있는 물이다. 그리하여 술을 마시면 취하게 되고, 취하면 얼굴이 빨개지고, 그것이 품고 있는 불로 인해 광기가 발동한다. 광기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십자가 색이 빨간 것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웃들에게 민원을 일으키면서까지 빨간 색을 고집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분이 글을 올린 것이다. 교회의 상징인 십자가가 빨간 색이어야만 한다면 모든 십자가를 빨간색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교회 안에 있는 십자가는 하얀 색이거나 원목의 색상을 그대로 살린 것이 대부분인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김동인의 소설에 광화사(狂畵師)가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불을 질러 놓고 타오르는 불을 보며 예술적인 흥취와 쾌감으로 인해 전율을 느낀다. 역사적으로 보면 네로가 로마 시내에 불을 질러 놓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이야기가 있다. 최근엔 북한의 새파랗게 젊은 김정은이 미국과 한국을 압박하기 위하여 로켓을 연달아 발사하는 것도 일종의 방화 본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이 원하던 상징이었을까?
옛날에는 해충의 알을 없앤다는 생각으로 정부에서 들불을 장려한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산불로 이어진다고 이를 철저히 금지시키고 있다. 사람은 이런 금지의 지시를 들으면 괜한 충동이 번져 무성한 마른 풀밭 앞에서 방화의 충동을 느끼게 된다. 싸움 구경, 물난리 구경, 불난리 구경 가운데 불구경이 제일 인간을 흥분하게 한다고 한다. 불놀이 같은 광기를 품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 북한 당국이 아닌가 한다. 밤이면 십자가에 불을 켜는 이유가 늦은 시각에 가난하고 지친 누군가가 교회를 쉽게 찾기 위해서라면 응당 누군가는 교회 안에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도회지 대부분의 교회는 자물쇠나 무인 경보기가 지키고 있다. 전기와 조명이 이용되기 전, 교회지붕에 세웠던 십자가도 빨간색이었는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어쩌다 도심의 야경을 내려다볼 때면 블록마다 빛나는 십자가가 천지다. 그러나 교회가 아무리 많아도 예배당 안에서만 사랑을 나누고, 신자들끼리만 교류하는 교회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교회의 사명이 복음을 전파하고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것이라면, 전도나 이웃을 구제하는 첫걸음은 동네에서 만나는 보통사람들과 불특정 다수에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심야에는 조명을 꺼두거나, 꼭 불을 켜야 한다면 교회안의 십자가처럼 하얀색으로 바꾼다면 신앙이 없는 이웃들에게 거부감을 줄여주지 않을까란 나의 생각을 조심스레 꺼내 놓는다.
십자가 조명을 바꾸는 것은 교리의 왜곡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배려이자 복음을 친근하게 전파하는 방법이라면 한 번쯤 깊은 고뇌를 해 볼만도 할 것이다.
불이 주는 광기와 교회의 불빛이 큰 연관은 없겠지만 붉은 빛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면 종교의 본질적인 차원에서 변화를 고려해 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 종교가 지향하는 바가 적어도 이웃에 불편을 주는 것은 전혀 아닐 것이다. 이웃을 배려한다면 그 상징과 불빛에 연연하지 않는 것도 예의라고 본다. 그래서 필자는 시민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색으로 교회의 불빛을 바꿔보자는 제안도 조심스레 꺼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