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경만

죽서루가 국가지정문화재의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다. 때 늦은 감은 있지만 국가문화재로서 역사 기술 예술 학술적 가치를 새삼 인정받은 셈이다.

죽서루는 이 땅에 살아왔던 선조들이 석회암 단애(斷崖) 위에 세운 누각이다. 아름다운 산수해(山水海) 자연진경(自然珍景)에 건축 이론을 배합시킨 누각은 동서양 흔치 않다. 천년의 세월 다가와도 그 아름다운 품격과 자태는 여전하다. 오늘날 최신·첨단공법이니 모더니즘이니 추구하는 건축물들이야 즐비하지만 어디 죽서루와 비할 바인가.

죽서루 한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풍광은 천지사방 절경이다. 두타산을 비롯한 고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기암절벽 아래 청자 빛 강물에는 물고기 떼 노닌다. 푸른 하늘에는 바다 갈매기 날고 동(東) 쪽으로 영상음수형(靈象飮水形) 신령스러운 코끼리 바다에서 올라와 물을 마신다. 그래서인가 삼척부사 이규헌(李奎憲)도 죽서루를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라 하였다.

오늘날 토목건축들이 자연에 대한 무질서와의 공존이라면 죽서루는 자연 질서와의 조화이다. 자연석 석초 위에 길이가 서로 다른 기둥을 세워 팔작지붕으로 안착해 있다. 누군들 대청으로 들어서면 앉고 눕고 담소라도 나누고 싶은 친근함을 더한다. 밤이 되면 영롱한 별빛과 절벽 아래 달빛 출렁이는 물결 속으로 전설 같은 이야기는 이어진다. 누군들 찾는 이에게 정겨운 서정의 샘이 절로 솟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이 자랑하는 누각 교토 금각사(金閣寺)에 가 보았다. 우리의 죽서루와 어느 것 하나 사뭇 다른 양식과 구조다. 3층 누각은 각과 직선의 형태로 건축되었으며 벽면은 가치를 높이고자 금빛 덧칠로 화려했다. 주변경관과 정원도 자연풍경을 축소하고 재현하여 조형미를 강조했음이다. 우리네 사찰은 방문자에게 자연의 조화로운 풍경과 에너지도 충전하여 주고 소망과 평화를 기원하는 곳이다. 하지만 금각사를 본 느낌은 우리와 어쩜 그렇게도 달랐다. 중국의 상동성 연태의 봉래각(蓬萊閣)은 또 달랐다. 그들은 그곳을 인간선경(人間仙境)이라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은 생각과 달리 매우 크고 넓었으며 인위적인 느낌과 현대판 테마파크에 가까웠다. 또한 호남성에 있는 악양루(岳陽樓)는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杜甫)와 이백(李白)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한다. 그 외 수많은 문인들에게도 시적 영감을 주었다지만 동정호(洞庭湖)는 담수호(淡水湖)에 불과했다.

죽서루는 금각사보다 화려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자연을 축소한 풍경과 정원을 만들어 아름답다 하지도 않는다. 자연은 각을 만들지도 않으며 직선도 아니다. 금각사는 일본 무사 정권의 강력한 통치자 쇼군(將軍)의 별장에서 사찰로 변한 탓인가 국화와 칼의 문화가 짚게 배어있었다. 죽서루는 중국의 봉래각과 악양루보다 층층이 높거나 거창하지도 않으니 애써 확대 해석조차 필요치 않는다.

예전 실직향토문화연구회가 있었다. 그 당시 한문 교육을 받은 세대 여러분들과 정기적인 만남으로 죽서루 한시 번역을 하고자 했던 모임이었다. 어느 날 모두가 둘러앉아 한시 번역과 해석을 놓고 서로 간 의견들이 분분할 때가 있었다. 그 때 원로 한 분은 “우리가 자칫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를 칠 수도 있다”는 충고가 지금도 머릿속에 맴돈다. 지금에선 또 다시 만날 수는 없는 생사의 관계지만 인생말년 죽서루 한시에서 깨달 수 있는 정신문명에 대한 애착심은 남달랐다.

죽서루에는 일찍이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한시를 남겼다. 천혜의 주변절경에 감탄하며 시로 노래로 심금을 울렸다. 자연을 벗 삼아 인간 사회의 삶과 우주의 진리를 깨달아 영원한 지혜를 열고자 하였다. 비록 자신의 삶이 스러지는 낙엽 같이 허망했을지라도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기질이 강했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며 집착과 탐욕도 없었으며 물질의 풍족함은 없을지라도 음풍농월(吟風弄月)하였던 것이다.

삼척시 행정구역은 백두대간의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쪽으로 흘러내린 지형지세에 위치해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유서 깊은 역사가 공존하는 사계절 살기 좋은 도시이다. 특히나, 시내 중심권에 위치한 죽서루와 성내동 성당은 예로부터 명달길지라 일컬었다. 풍수적으로도 하늘과 땅 산과 물길을 사람으로 연결시켜주는 명당인 곳이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백두대간 두타산으로 이어져 근산에서 뻗어 내린 힘줄은 싹둑 잘려나갔다. 코끼리산의 앞 물길은 바뀌어 지역 중심의 도심지로 형성되었다. 선계(仙界)라 불리던 죽서루와 성지(聖地)인 성내동 성당은 주변의 시계를 가로막는 건축물로 숨이 막힐 지경에 이른다. 심지어 당대에 국보급 맹방해변마저 파괴된 꼴을 보노라면 탄식은 절로 나온다. 지난 시간 삼척 죽서루를 찾은 이어령 (전)문공부 장관도 죽서루에 올라서 저 멀리 두타산 시야를 방해하는 건축물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바도 있다.

자연은 인간의 삶의 터전이다. 오늘날 현대 문명의 이기는 인간에게 풍요와 많은 편리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렇다고 아무리 눈부신 과학 물질문명이 자연에 대한 이해도 넓혔다 할 수 있겠는가. 천박한 가치가 지배하는 자본과 끝임 없는 욕망 그리고 영혼 없는 물질욕의 욕구는 적폐가 되었는지 오래다. 우리의 허영심이 넘치면 넘칠수록 자연환경은 파괴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들의 이런 탐욕에 눈멀어 혼란한 삶을 살아갈수록 어쩜 유리상자 속에 살아가는 꼴이나 다름없음이다.

죽서루 한시가 전하는 선계(仙界)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이다. 동서고금 인류사 어느 성인도 정신세계보다 물질세계의 가치를 우위에 두지 않는다. 죽서루 한시의 맥은 눈으로 손으로 닿는 영역이 아니다. 자연의 공간에서 자신과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정신세계이면서 천지우주를 하나의 생명체로 여겼다.

우리는 죽서루 주변 시야의 자연풍광을 지켜나가야 한다. 죽서루 한시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선조들은 자연을 담고 사람을 품으며 살았으니 무위자연의 보물 같은 지혜가 담겨있다. 현세 날로 각박해지는 세상 더불어서 진정한 마음을 열고 정신적 교감도 함께 하는 평화로운 대동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죽서루 한시의 자연사랑은 곳 나라사랑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국보급 정신적 유산임에 분명해 보인다.

오늘에서 죽서루 한시가 전하는 불멸의 가르침을 어떻게 재창출할 수는 있을까. 하늘로 향한 하얀 목련꽃 만개한 신비로운 봄날 아침 홀로 아름다운 희망을 꿈꿔본다.